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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마녀의 솥

[요리] 겨울 16편, 육개장과 소주


 

 

 

“남의 집으로 넘어온 담배 연기 처벌해야죠.”

“그 연기를 어떻게 막습니까. 아예 이참에 자동차 배연가스도 죄로 다스리지 그래요.”

 

수키는 바리데기를 만나러 왔다 한참 담배 연기와 배연가스로 투덕대는 저들의 모습에 눈을 가자미처럼 좁혀 바라봤다. 온화하게 웃고 있지만 바리데기의 눈은 대리석 바닥처럼 차갑고 냉골이 시리기만 하다.

그들의 회의는 1시간이 넘어갈 때까지 좁혀지지 않았고 해결되지 않은 채, 2차전을 준비하려고 서둘러 도망치듯 회의장을 나왔다.

 

“저 망할 공무원 새끼들. 대체, 이번엔 뭔 죄목으로 부서를 늘리려는 거야. 뭐? 금연 구역으로 지정된 아파트 연기는 뭐가 어쩌고저째? 미친놈들 아냐?”

“수키. 여긴 어쩐 일로 찾아왔어요? 당신은 죽은 이들을 인도할 때 빼고는 저승에 발길조차 닿는 걸 싫어하잖아요.”

 

바리데기는 수풀레처럼 부풀었다 꺼지는 수키의 등을 보며, 말했다. 그들은 바리데기의 사무실에 앉아 있다. 장미 향기와 상큼한 레몬냄새를 풍기는 수키는 꽤나 이곳이 불편한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털이 죽은 자처럼 뻣뻣하다.

 

“……키르케를 만났어.”

“오! 당신을 그 ‘식탁’에서 빼내 준 그 마녀군요.”바리데기는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바리데기. 넌 고대 신에 맞설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지. 많은 사람들이 염라를 저승의 신이라 알고 있지만, 실제 저승을 다스리는 건 바로 너야. 그리스 신들만큼이나 식탁만…….”

 

여기까지 말한 수키는 힘든지 고개를 떨궜다. 가엽고 나약하지만 사랑스러운 수키의 모습에 바리데기는 권태로운 눈으로 수키를 내려다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뭘 말하려 온 건지 알아요. 하지만, 당신, 성격상 먼저 말하기 어려 울 테니, 이번엔 내가 선심쓰죠. 먼저 제안하죠. 저와 계약해요. 수키.”

“……가끔, 넌 부모처럼 굴 때가 있다니까.”

 

 

 

 

겨울 16편, 육개장과 소주

 

 

 

 

한편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어내던 K는 사람들의 조문을 받고 있다. 집안에 남자나 아는 사람이 없어 그가 상주를 서야만 했다. 다들 그런 그를 보며 안됐다며 앞에서는 위로했지만, 뒤에서는 여자 상주라니, 재수 없다고 혀를 차면서도 배를 채우려고, 화투를 치려고 자리에 앉는다.

혀를 찬 남자를, K는 기억한다. 술에 잔뜩 취한 채로 한밤중에 갑자기 쳐들어와 뻔뻔하게 안주를 만들어 오라고 했던 작은 키의 남자였다. 그의 양옆으로 두 명도 기억한다. 한 명은 죽은 남편의 상사면서 공사판 일거리를 주는 최 반장이었고 오른쪽 남자는 멀쑥해 보이지만 인상이 흐린 남자였다.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습니까.”

 

최 반장이 송구스럽다는 듯 말했다.

 

“저 사람이 참 속상해서 저렇게 말하는 거니 신경 쓰지 마세요.”

 

빈말이지만 결국 나보고 닥치고 참으란 소리였다. 예전에는 저런 말들이 격식 있고 얌전해 보였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한쪽이 욕하고 때려도 조용하란 뜻으로 비꼬게 들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K를 공격하고 상처 낼 수 있을지언정 끄떡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이해한다고 말했다. 고개를 드니 최 반장은 그날 밤처럼 한밤중에 찾아 와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며 굽신거리는 등을 다시 마주했다. 참으로 별 볼 일 없는 남자다. 이 장례식이 끝나면 더 이상 마주할 일도 없으니, 뭐. 여기까지 생각한 K는 고개를 모로 돌렸다.

 

다른 문상객들이 험한 말을 하는 남자를 조용히 시키며 쉬쉬했지만 다 들렸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과 이야기를 못 들은 척하며 그는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얼굴을 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단 인간이 죽었는데, 저딴 말이 대수야. 슬슬 다리가 아파질 즘에 남직원이 다가왔다.

 

“저, 상주분 잠시 상주 문제로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로 보이는 말쑥하고 다부진 몸의 남자 직원이 다가와 또 상주 문제를 들먹인다. 분명 끝난 이야기임에도 자꾸만 말을 번복하는데, 저치나 이치나 똑같지만 쪽수로는 직원 쪽이 편하니 K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시만요. 금방 가죠.”

 

이야기할 곳이 마뜩잖아 복도에서 서서 그들은 대화를 나눴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상주는 아무래도 남자분이 스셔야 좋아요. 아까 상주분도 보셨듯이 여자면 저렇게 얕잡아 보신다니까요. 상주분이 오빠나 친척 남자분이 없다고 하셔서 서게 해드리긴 했지만, 아무튼 상주는 남자 가서야 망자도 좋은 곳으로 가지요.”

‘난 그 새끼가 좋은 곳에 가는 거 말고 지옥에 떨어지면 좋겠는데.’

 

그가 가만히 있자, 직원은 자신의 말에 반쯤 설득 됐다 싶었는지 좀 더 밝고 강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자신이 준비한 내용에 박차를 가했다.

 

“아. 아니시면, 오늘 오신 손님분 중 한 분에게 상주를 부탁하면 어떨까요.”

 

아는 사람이 정말 없다고 하자, 직원은 오늘 오신 손님 중에 그러면 한 분에게 부탁해서 상주를 맡게 하는 건 어떻겠냐는 말이 나왔다. 직원의 말에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자가 서면, 천국에 가야 할 망자가 저승으로 가나?”

“네?”

“새고기를 드셨나 벌써 까먹게? 좀 전에 댁이 말했잖아. 상주가 남자여야 좋은 곳으로 간다면서.”

“아, 네.”

“…….”

“…….”

“…….”

“상주분 제 말은 그 뜻이 아니라…….” 가만히 있던 직원은 그제야 그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서둘러 사과와 변명을 하려고 몸을 90도로 숙인 뒤 입을 겨우 뗐다.

 

“아니긴.”

“저… 상주분 화가 나신 건 알겠는데… 반말은 좀….”

“아, 반말해서 기분 나쁘세요. 그럼, 너도 하세요. 내가 이번엔 상황이 상황인 만큼 허락해 줄게.”

“….”

“판을 깔아줘도 못하네. 야, 그리고 내가 나보다 한 참 어린 너한테 존대하겠니.”

“…….”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나 화 안 났어. 지금 무지 기분 좋아.”

“네? 기분이… 왜 좋으세요?”

 

기분이 좋다는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직원은 패닉에 빠진 것 같았다.

 

“그건 됐고, 일단 당신 말은 그러니까 상주를 남자로 세워라. 없다면 저기 조문객 중의 한 명으로 상주를 세우라 이 말이잖아.”

“아, 네. 부인.”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하죠.”

“진짜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짜 새고기를 먹은 건지 직원은 좀 전에 주눅 든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싱글벙글, 이다. 그의 속내도 모르고 얼른 가자며, 재촉하는 직원에게 잠깐 기다리라며 상주 완장을 내리며 그가 말했다.

 

“참, 돈은 대부분 상주한테 받으시죠.”

“네. 그렇죠. 상주분이 달라도 그걸 찬다는 건 곧 가족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아…가족. 그 말도 일리 있네. 그럼, 돈은 제가 아니라 그 분한테 받으시면 되겠네요. 전 한 푼도 안 내고 조문객들의 돈을 챙길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네.”

“네?”

 

K의 말에 직원은 우뚝 멈췄다. 그리고 돌아보며 대체 이 사람이 뭔 얘기를 하냐는 얼굴로 쳐다봤다. K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아까도 말했죠. 제가 상주를 서면 제가 다 값을 치른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말투를 바꾸며) 기억하지. 좋아. 그런데, 방금 당신이 말한 것처럼 상주가 제아무리 남이라도 상주로 서면 가족이라면서.”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왜? 그쪽 논리대로라면 지금 내 말에 반박을 못 할 텐데.”

 

직원은 분한지 시뻘게진 얼굴과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그는 직원의 어깨를 툭툭 치며, 시건방지게 사사건건 나대지 말라고 한 뒤 마음 잘 추스르고 가세요, 라고, 웃으면서 상냥하게 말했다. 그가 떠나고 직원은 분한지 바닥을 탕 소리 나게 치고는 입술을 꾹 말아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내일도 공사판 일이 있어 조문객들이 얼마 남지 않자, 그는 바닥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좀 전까지 소주와 육개장을 한 그릇하고 나니 잠이 더 심하게 쏟아진다. 그는 잠깐 눈이나 붙이자 싶어 벽에 머리를 기댔다.

 

 

*

 

 

Rrrr…. Rrrr….

깜빡 잠이 들었는지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그는 눈이 번쩍 뜨였다. 앞에 놓인 핸드폰을 보니 처음 보는 번호다. 받지 말까 하다가 전원 버튼을 옆으로 밀었다.

 

“여보세요.”

“네 고객님 xx 보험 상담사 나 미리, 라고 합니다.”

“아, 네.”

 

K는 흐르는 침을 닦아내며 고개를 들었다. 조문객들은 어느새 다 빠져나가고 10 댓 명 정도 남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술에 잔뜩 취해있거나 고스톱을 치며 하하, 호호 웃고 있었다.

 

K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남편의 사망보험금이라면 오늘 낮에 모두 끝난 상태라 더 확인할 건 없었다. 그가 필요한 구비서류를 모두 보험사에 제출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조만간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문제가 생긴 걸까. 이제 와서 보험금을 못 받을 일이 생기면 안 되는데.

 

손톱을 까득까득 깨물며 그는 불안한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지나친 생각일 뿐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남아 있는 가족은 있는지 재정 상황에 관해 묻더니 새로운 미래를 위해 투자종목 보험 상품을 권유하려고 전화를 한 것이었다. 맥이 빠진 그는 됐다면서 통화버튼을 꺼버렸다.

어느새 새벽 4시였다. 이만하면 더 올 사람도 없겠다 싶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에서 고스톱판이 벌어진 곳을 힐끔 봤다. 저들에게 말을 걸어봤자 지금은 잔뜩 술에 취해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할 테니 후딱 화장실에 다녀와야겠다.

 

마렵지도 않더니 변기에 앉자마자 시원하게 쏟아냈다. 화장실에서 나와 거울을 보니, 참으로 가관이다. 머리를 잔뜩 헝클어져 있지 얼굴은 퉁퉁 부어있다. 아까 먹은 육개장이 너무 짜서 부은 듯싶다. 뭐라도 찍어 바르기에는 지금 몰골이 맘에 들어 내일 남편의 관이 화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유지해야 했다.

 

막 나가려다 그는 화장실 칸 하나하나를 열어 사람이 있나 없나 확인했다. 화장실 칸은 모두 비어있었다. 그는 밖에 한 번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과 이제 더는 폭력을 견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자 마음도 몸도 가벼웠다.

 

“하아-. 잘 뒈졌다 이 더러운 인간아. 너 같은 거랑 한평생을 산, 내가 누구보다 불쌍하지만. 네가 죽음으로써 내 통장에 꽂힐 그 막대한 보험금은 그간 네가 나에게 저지른 죗값의 보상으로 받을게. 하하. 이럴 줄 알았더라면 한 개 더 들어놓는 건데. 낄낄”

 

그는 남편의 영정사진 앞에서 말하고 싶었지만, 그 지저분한 면상 앞에서 했다간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혼자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내뱉는 게 안전했다. 남편의 보험금은 그의 새로운 시작의 자본이 될 터였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튼튼한 동아줄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그의 인생을 이해하지도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것에 경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 그는 자유롭고 행복하다.

 

“죽었을 때 그 새끼가 고통스럽게 끙끙, 조금이라도 더 늦게, 많은 고통 속에서 죽었어야 마땅하지만…… 뭐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건……용서해 줄게.”

 

그는 거울 앞에서 한참을 그렇게 서서 조롱했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화장실 천장에 서서히 검은 그림자가 그를 향해 손을 뻗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