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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마녀의 솥

[요리]가을 13편, 평소 먹었던 치킨이 맛없다면 그건 필시 유령 탓이다.

보라는 저승사자 일을 20년이나 해온 베테랑이었지만 보라 밑으로 새로운 인력이 들어올 일이 없으니, 평생 신입 꼬리표를 뗄 수 없었고 새로운 놀라움은 그간 저승사자 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보라에게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 신기하고 재미난 일이 지금 눈앞에 생겼다.

 

“안녕, 저승사자들아~. 난 마녀 키르케야.”

 

마녀. 세상에. 마녀라니.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근데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저승사자도 있는데, 마녀가 없으리란 법이 어딨어? 주황색 머리를 나풀거리며 우아하지만 매혹적인 키르케라고 자신을 소개한 마녀가 우리들 앞에 서 있었다.

 

“의뢰를 하나 하고 싶은데… 수키.”

“헛소리 하지 마. 키르케.”

“물론 보수는 톡톡히 해줄게. 개다래 나무는 어때~♡”

“닥쳐. 하~ 다들 먼저 돌아가.”

 

그는 온화한 눈으로 대장에게 말했다. 그런데, 대장은 별로 달가운 손님은 아닌지 우리를 먼저 돌려보냈다.

 

 

 

 

가을 13편, 평소 먹었던 치킨이 맛없다면 그건 필시 유령 탓이다.

 

 

 

 

유령 컴퍼니는 보라가 살고 있는 건물에서 지하철로 30분 남짓 거리에 있었다. 보라는 이승과 저승의 경걔를 넘나들며 두 세걔를 오고 갔다. 낮에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밤에는 길 잃은 영들을 찾거나 저승으로 안전하게 보내는 거였다. 회사에 제일 먼저 오면 신문과 간밤에 올라온 글을 확인한다. 이상한 심리 현상이나 저승과 관련 된 게시 글이 올라오면 읽어보고 상담약속이나 -불성실한 이야기에도-담변을 남겼다. 은근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어제 올라온 글은 총 네 개. 보라는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냈다. 담아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게시 글 하나를 클릭했다. 제아무리 장난 글이라도 심혈을 기울여 읽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안에 진짜 심리 현상을 찾는 게 보라가 할 일이다. 오늘 의뢰는 흠, 별다른 게 없네. 한 개는 가정폭력, 나머지 세 건은 장난이다. 그중 가장 재미난 글은 마지막 글이다. 한밤중에 자기 집고양이가 밖으로 나가길래 뒤따라가 봤더니, 공터에 고양이들이 모여 수다를 떤다는 거였다. 특히 집고양이들은 자기들 주인의 단점을 비웃으며 겁쟁이 이랑 이라고 했단다.

 

이건 뭐 에린 헌터의 글을 너무 많이 본 게 아닌가 싶다. 만일, 이 글이 실제라면, 한 번쯤은 보고 싶기도 하다.

 

“어이, 겁쟁이 이랑. 너 또 미리 화장실 안다녀오면, 이불에 지리고 말걸. 흐흐. 진짜 고양이들이 이러면 웃기겠다.”

 

대장도 이런 적이 있으려나? 보라는 멋진 상상력을 들려줘서 고맙다는 짧은 댓글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쓰레기를 보며 보라는 혀를 짧게 찼다. 어휴. 더러워라. 며칠 힘들다고 정리를 안 했더니 책상 위가 엉망이다.

 

대장과 자신을 제외하고 사무실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타나와 바벨은 영혼이라 낮에는 주로 돌아다니지 않았고 설령 돌아다녀도 지금은 밤이 아니라서 옅은 금실처럼 반짝이는 게 다겠지만. 창문을 활짝 열고 보라는 지저분한 영수증과 쓰레기들을 정리했다.

 

저 멀리서 쾅 쾅 거리며 소리치는 목소리와 크레인이 움직이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영수증은 옛날 것과 최근 걸 잘 확인해야 했다.

원래는 이런 사무실도 없었다. 보라는 저승사자지만 사람이고 어른이었다. 어른은 아이랑 다르게 직업이 있어야 한다. 한때 보라도 취업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과 저승사자의 일을 병행하면서 하기엔 무리였다. 애써 아닌척했지만 몇 번 크게 쓰러지는 바람에 대장에게 잔뜩 혼이 난, 보라는 절대 저승사자 일을 관두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대장은 혀를 차면서도 해결책을 금방 찾아주었다.

 

저승사자의 사무실이라니. 원래는 안 되지만 작은 사무실을 내고 의뢰를 받는 걸 바리데기가 허락해 주었다. 대장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라는 새로운 직장도 얻고 저승사자의 일도 할 수 있었다. 물론 영수증이며 세금 납세의 의무도 잘 지켜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영수증은 필수였다.

 

저승도 제법 체계가 잡혀있는지라 제출할 서류가 한둘이 아녔다. 인간계도 힘든데, 저승에까지 보고해야 한다니. 하지만 불만불평 할 수는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보라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대장은 해주고 싶어도 고양이라 도움을 줄 수 없었고 바벨과 타나도 마찬가지였다.

 

“자, 이건 저승에 보낼 거고. 이건…. 작년 거네. 버려.”

 

대충 정리를 하고 시간을 보니 벌써 12시다. 배꼽시계는 정확하게 꼬르륵하고 소리친다. 지갑을 들고, 1층 편으로 내려갔다.

 

‘흐음~ 자, 오늘은 새로운 음식이 뭐가 있을까.’

 

신상으로 나온 인기가요 샌드위치가 들어왔다고 좀 전에 알람이 떴다. 보라는 제로 콜라 하나와 샌드위치 그리고 유부초밥을 들고 계산대 앞에 섰다. 그런데 오늘따라 인부들이 많다. 요 근방에 새로 공사 시작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꽤 많은 외국인과 한국인들이 뒤섞여 있었다.

 

안전모와 지저분한 옷에 뒤엉킨 먼지가 공중에 폴폴 떠다녔다. 출입문은 열려있어 먼지들은 들어오기도 나가기도 했다. 그들은 뭘 먹을지 아까부터 이국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인부가 지난번에 보라가 최악으로 꼽은 도시락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최고로 꼽은 도시락을 들고 고민하고 있었다. 보라는 자기도 모르게 오른쪽을 고르라고 간섭하고 싶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이게 맛있습니다.” 말하기도 참 뭐했다.

인부는 좀 고민하더니, 결국 최악을 선택했고. 보라는 그의 미각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벌써 들려오는 듯했다.

 

어느새 자신의 차례다.

카운터에는 무뚝뚝한 남 알바생이 금액도 말하지 않고 성의 없이 말했다. 윽. 12,500원이라니. 요즘 물가 너무 비싸다.

 

“카드 앞쪽에 꽂아 주세요. 봉투 필요하신가요.” 대충에 건들거리는 말투로 알바 생이 말했다.

“아뇨.”

“할인이나 적립 있으신가요.”

“아뇨. 영수증만 주세요.”

“하아. 네.” 그런 건 빨리 말하라는 식으로 대놓고 한숨을 내쉬는 남알바생에게 보라는 슬슬 빡 쳤지만 참았다. 이 근방에 가까운 편의점은 여기 한 군데 뿐이었고 음식점이나 카페는 좀 떨어져 있었기에 보라는 음료와 음식을 챙기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고개를 드니 출입구에 도깨비처럼 시뻘건 얼굴을 한 덩치 큰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목에는 가죽 끈으로 된 나무 십자가가 걸려있었다.

 

인부들은 긴장한 건지 그 남자가 움직일 때마다 움찔하며 홍해가 갈라지듯 비켜주었다. 그는 곧장 주류 칸으로 가서 소주 한 병을 꺼내더니 줄을 무시하고는 카운터에 바로 올려놨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카운터의 알바생도 줄을… 까지만 말하고, 뭐! 라는 한 마디에 입을 다물고 바코드를 찍었다. 알바생이 1900원이라고 하자 그는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와 동전을 던지고 나왔다. 알바생은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우며 조용히 구시렁댔다.

 

“어이, 강 씨. 또 술이야. 아까도 잔뜩 취해서 비틀 대더만. 속버리니 그만 마시게.”

“뭔 상관이야! 술 먹어도 일만 잘하면 되는데. 시비 걸지 마쇼!”

 

그는 성질을 부리며 밖으로 홀랑 나가버렸다. 막 들어오려던 인부 세 명 중 한 명이 혀를 끌끌 찼다.

 

“쳇. 지가 무슨…. 진짜 말처럼 일을 잘하면 몰라. 여기저기 사고 안내면 다행이지. 퉷” 세 명 중 가운데 키가 작고 뚱뚱한 남자가 말했다.

“바닥에 침뱉으시면 안돼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인부는 신발을 바닥으로 문대며 말했다.

“최반장님. 아니. 형님. 아, 저런 놈을 왜 받아주고 있소.”

“그래도 옛날엔 성실하고 착한 놈이었어. 이런데서 일할 사람도 아니고.” 왼쪽의 마르고 키가 크지만, 완장을 차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착하기는 무신. 그러고 보니 옛날에 신문기자로 이름 좀 날렸다고 하지 않았소. 그, 뭐냐. 어디 *뱀 잡기로 유명 기자였다메. 근데 기사 한 번 잘 못 써서 여기 오게 됐다고 했지. 형님이”

“어. 그 일로 고소를 몇 번 당했나 봐. 옛날엔 기자상도 받고 그랬다는데. 안타깝지. 근데, 참 사람들이 모질고 야박해.”

“누구요? 아~ 그 고소한 치들.”

“그려. 아, 그 사람들도 그래.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데도, 용서는커녕. 고소하고 가더라더니까. 물론 저 친구가 잘못은 했지만, 용서를 구하는데도 어찌나 사납게 노려보던지. 보는 내가 다 안타깝더라고.”

“안타깝기는. 허- 잘못했으면 벌 받는 건 당연한거지. 뭐~얼. 형님 그리고 왕년에 이름 좀 안 날린 사람 어딨어요. 나도 왕년에….” 오른쪽 남자가 으스대며 말했다.

“칠뜨기거나 팔푼이였겠지. 형님은”

“…이 자식이!” 뚱뚱한 남자가 팔을 뻗었지만, 오른쪽 남자의 머리카락만 스쳤다.

“허허- 이 사람들이…. 그만들하고 얼른 담배 사고 가자고. 여기서 계속 떠들 셈이야.”

 

그들을 뒤로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언제 왔는지 대장이 창가에서 늘어지게 하품하고 있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오늘도 심기가 많이 불편해 보이는데. 이럴 땐 얌전히 있는 게 상책이다. 며칠 전에 마녀를 만나고 오더니 내내 저런다.

 

“대장, 샌드위치 사왔는데 조금 드릴까요.”

“됐어. 오늘 별 다른 건 없나.”

“네.”

“그럼, 점심 먹고 더 할 거 없으면 퇴근해.”

“앗! 그래도 돼요.”

“그래.”

“앗싸!”

 

대장은 졸린지 눈을 껌뻑이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보라는 접객용 테이블에 사 온 음식들을 펼치며 하나하나 맛봤다. 딸기잼과 에그 마요 거기다 야채와(그래봤자 당근과 오이가 넣은 건지도 모르게 부실하다.) 감자까지. 맛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한 맛이다. 거기다 재료가 앞쪽으로 쏠려 양이 많아 보여도 실상은 잔칫집에 먹을 게 없다. 란 결론이 나왔다. 차라리 도시락을 사 먹을걸.

유부초밥은 언제 먹어도, 보통은 갔다. 입가심으로 제로 콜라를 마셨다.

 

“으아, 잘 먹었다.”

 

든든한 배를 채운 보라는 쓰레기를 정리하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어느새 대장은 햇볕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두 번 정도 쓰다듬으니 귀찮은 지 꼬리로 탁탁 바닥을 친다. 아, 귀여워. 1시간 뒤면 보라도 퇴근이었지만 마지막으로 인터넷을 확인해도 별 다른 게 없어, 보라는 대장의 말대로 이른 퇴근을 했다. 보라가 일하는 시간은 아침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다. 은행이나 다른 업무를 보지 않는 이상 3시 전에는 집에 들어갔다. 밤에 저승사자의 업무를 해야 하니, 일찍,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했다. 몸의 피로는 곧 일에 지장을 준다.

 

집으로 곧장 돌아온 보라는 가방을 던지며 바닥에 툭 하고 앉았다. 꼬르륵. 편의점이나 인스턴트는 맛있기는 하지만, 금방 배가 꺼지고 허전하게 만든다.

꼬르륵~.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아. 남들은 30이면 속이 부대껴서 잘 먹지도 못한다는 데 나는 10대도 아닌데 배가 금방 꺼지네.

 

꼬르륵. 벌써 세 번째다. 이쯤 되면 참는 것도 스트레스니 시키자. 핸드폰을 열어보니,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라, 먹을 것도 없다. 운도 지지리 없지. 그렇다고 또 편의점 음식을 먹기엔. 쩝.

 

“보라, 점심 안 먹었어?” 타나는 현관을 통과해 둥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 타나. 안 먹긴요. 오늘도 배부르게 먹었는걸요. 근데, 부실했는지…하하하.”

“흐음. 그럼, 우리 치킨 시켜 먹을까. 나도 때마침 배고픈데.”

“에? 타나랑요?”

“응. 응. 전에 먹었던 고추 바사삭 먹자. 왜?”

 

그걸 정말 몰라서 묻나. 당신, 또 홀라당 닭 영혼만 빼 먹을 거잖아. 그럼, 맛없다고.

 

“음……, 타나. 저도 치킨 맛있게 먹고 싶어요.”

“응. 응. 그러니. 시키자.”

“에휴. 타나가 지난번에 닭다리 두 개 몽땅 영혼을 빼서 먹어서 제가 맛없게 먹은 거 알죠.”

“오, 맞아. 그런 적이 있었지. 하하. 그때, 네 얼굴 네가 봤었어야 했는데. 완전 죽 쒀서 개 줬다는 얼굴이었어. 와하하-.”

“하나도 안 웃기거든요. 저 그때 치킨이 맛없는 거 처음이었다고요.”

“미안. 미안. 이번에는 닭다리랑 날개 한 개씩만 먹을게. 참, 사과의 의미로 닭 가슴살 너에게 양보할게.”

“……저도 닭다리랑 날개 먹을 줄 알거든요! 됐어요. 절대 안 시켜 줄 테야.”

“뭐-어? 보라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뭐요.”

“성질이 더럽구나.”

“아니, 뭐라고요! 타나! 타나가 영혼 없는 맛없는 치킨을 먹어봤어요. 안 먹어 봤잖아요!”

“보라야, 그렇게 화내면 얼굴에 자글자글 주름만 생겨. 너 저번에 그랬잖아. 나보다 나이 많다고.”

“이. 이…너무해 절대 안 시켜 줄 거야!”

 

하지만, 다음날 보라는 귓가에 계속 고추 바사삭~ 외치는 타나 때문에 치킨을 시켰다. 고추 바사삭 두 개를. 하나는 타나. 하나는 보라 자신의 몫으로. 이렇게 하면 각자 먹기 때문에 맛없는 치킨은 한동안 안녕이지만, 나중에 영수증을 대장에게 들켜 된통 혼 난 타나와 보라였다.

 

‘으~ 나는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