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뉴요커의 음식 예찬 맛있는 인생 이야기 - 크루아상이여, 다시 한 번! 참조해서 섰습니다.
Rrrr‧… Rrrr‧…
달칵.
“네, 여보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반장님. 어쩐 일로 전화를 다……네?! 남편이요? 어머, 세상에. 그래서 지금 병원 장례식장이요. 흑. 흐…윽! 네. 네. 금방 갈게요.네. 네. xx병원 지하로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외투를 챙기며,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조금 전 눈에 그렁그렁했던 눈물을 누구보다 냉정하게 닦아내며 히죽 웃으며 그는 생각했다.
‘드디어, 그 질긴 것이 죽었다. 그 끔찍한 것이 드디어 길고 긴 시간을 살다 죽었다. 아, 나는 이제 해방이다. 나는 이제 해방이다.’
비실비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킥킥 거리고 웃으며 그의 멍든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는 누가 봐도 기괴했다. 오늘 아침만하더라도 남편은 내 머리채를 또 벽에 찧으며 거짓말을 한다고 발악을 하고 갔다. 엎어진 밥상과 더러운 집 안, 밥상을 다시 뒤집으며 남편이 평소 먹던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밥떡거리와 반찬이 들러붙어있었다.
추잡스럽기는. 저건 박박 수세미로 닦아야 겨우, 사라진다. 이제 더는 닦을 필요도 남편을 위해 식사를 만들 필요도 없다.
아아. 저 빌어먹을 놈이 뒈졌으니 드디어 해방이다. 그간 들어놨던 보험금이 떠올랐다. 남편이 힘든 노동일을 하면서 들어놨던 사망보험금이 생각났다. 그거면, 언제든 새 출발을 할 수 있겠지.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여기를 떠나기엔 충분했다. 자꾸만 비실비실 세어 나오는 웃음에 그는 병원에서 이 같은 실수를 할까 덜컥 겁이나 자신의 뺨을 짝소리 나게 때렸다.
“짝! 웃지 마. 우는 척 연기 해야 해. 남편이 아무리 개 쓰레기라도 아내가. 짝! 장례식장에서 웃으면 사람들은 그 놈이 한 짓거리보다 나를 더 욕보이니까. 거짓말 하자. 남편이 했던 것처럼 또 거짓말 하네……. 거짓말쟁이. 에잇, 이 거짓말쟁이야!”
그는 자신의 세뇌하며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조금 불편했지만 그 놈이 죽었다는데 이보다 기쁜 소식이 어디 있을꼬.
“히히. 그 놈이 죽었다. 히. 히익!”
문을 잠그고 가려는데 옆집 여자가 가만히 문 앞에 서 있어 그는 흠칫 놀랐다. 혹시나, 자신이 지금껏 한 말들이 들었을까 봐. 옆집 여자는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어? 가만 보니 이 사람 남편을 신고했던 사람이네. 전에도 봤지만 예쁘장한 외모에 어딘지 모르게 나른한 말투였는데 오늘은 기묘하면서 서늘한 인상의 느낌을 받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옆집 여자를 보며 어디가 아픈 걸까? 란 생각이 들었다. 전에 신고도 해줬고 오늘 그 놈이 죽었다는 소식도 들었으니, 어디 착한 일 좀 해볼까?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하지만 옆집 여자는 그 말만 하고 문 앞에 계속 가만히 서 있었다. 옆집 여자의 영문 모를 행동에 불편함을 느낀 그는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어쩐지 그래야만 해야 할 것 같다.
가을 14편, 여행 그리고 이국의 맛과 멋. 최고의 크루아상
“어머, 오늘은 꽤 기세등등하네.”
“그럼요, 오늘은 타나가 말 한 건 뭐든 사 줄 수 있다니까요.”
“어머~~~ 저 박력!!! 그럼 나 햄 잔뜩 들어간 샌드위치 사 와 줘.”
“네!”
아이처럼 잔뜩 신이 난 보라도 눈을 반짝이며 날쌘 걸음으로 달려갔다.
콧김을 내뿜으며 보라는 책상에 햄버거와 햄치즈샌드위치를 올려놨다. 타나는 샌드위치에 들어있는 햄 하나를 쏙 빼먹으며 잘했다고, 보라의 등을 팡팡 쳤다. 보라가 기세등등한 건 바로 오늘이 월급날이기 때문이다. 지난달에 고생한 보람이 있었어. 제법 되는 월급을 떠올리며 보라는 햄버거를 두 손으로 꽉 잡고 한입 가득 넣었다.
우물우물. 물끄럼.
우물우물. 물끄럼.
“맛있어.”
“네. 이번에 패티랑 치즈 두 장씩 추가해서 평소보다 더 양도 많고 맛있어요.”
꼴깍. 타나는 종이에 스며든 기름과 치즈를 보며 침을 주룩 하고 흘렸다.
“치사하게……. 햄버거 보라꺼만 사 왔어.”
“치사하다뇨? 아까 타나는 샌드위치면 충분하다면서요.”
“너 먹는 거 보니, 나도 햄버거 먹고 싶어서 그래. 한 입만 먹으면 안 될까.”
“….”
“왜?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색색 거리를 소리를 신경질적으로 내뱉으며 억울하다는 듯이 타나가 말했다.
“타나, 그래 놓고 입 크게 만들어서 다 먹어버렸잖아요.”
“이번엔 진짜 안 그럴게.”
“….”
“아이, 진짜라니까. 내가 이번에도 그러면 타나가 아니라, 악령이다!”
“그래도 안 돼요.” 보라가 한입 베어 물며 말했다.
“너무해! 보라. 우리 사이가 고작 이것밖에 안 돼. 내가 그렇게 신뢰가 없어!”
“당연하지. 매번 까불대고, 제멋대로면서.” 한 손엔 홍차와 받침대엔 비스킷을 얹고 바벨이 들어왔다.
“에~. 바벨까지 이러기야. 우린 같은 팀 아녔어.”
“팀은 팀이고. 맞는 건 맞는 거지.”
“그러고 보니, 바벨은 늘 홍차와 비스킷이네요. 마치 영국인 같아요.” 보라가 말했다.
“버릇이야. 영국에서 오래 살아서 이젠 습관처럼 이래.”
“몇 살 때 입양돼서 한국에 들어왔어요?”
“난 3살 때 영국으로 입양돼서 그곳에서 평생을 살았어. 그리고 오븐폭발로 사망했지.”
“……세상에나. 아니, 근데 어떻게 한국에 왔어요? 귀신은 자신이 산 땅에서만 살 수 있는 거 아녔어요?”
“맞아. 대장이 저승으로 날 인도하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저승사자가 돼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서 함께 일하게 됐어. 영국에서 일을 하다 대장이랑 함께 한국으로 파견 받아 오게 됐지. 처음엔 낯선 동네라 헤맸지만 여기서 제법 살다보니 이젠 고향 같아. 뭐, 피가 한국인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오! 그렇구나. 바벨. 유럽은 빵이 유명한데, 진짜 한국이랑 달라요.” 보라는 어느새 햄버거 안에 케첩과 감자튀김을 섞어 먹고 있었다.
“그럼, 디저트도 물론 달콤하고 맛있지만 주식 빵은 밥처럼 담백하지. 난 디저트보단 주식 빵을 더 좋아해. 특히 막 나온 바게트와 크로아상은 파삭-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데, 거기에 커피나 초콜릿을 곁들여 먹으면 일품이야.”
“우와-.”
바벨의 말만 들어도 맛있는 소리와 냄새가 여기까지 느껴진다. 보라는 햄버거를 네 입 만에 다 먹어 치우고 손가락에 묻은 소스와 육즙까지 쪽쪽 빤 뒤에 바벨에게 계속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바벨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내가 10살 때인가, 부모님과 함께 프랑스에 놀러 간 적이 있었어, 거기서 먹은 *크루아상은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맛이지. 우리가 머문 곳은 창문을 열면 운하가 보이는 멋진 호텔이었지. 호텔 밖으로 나오면 이국적인 냄새와 함께 버터를 듬뿍 넣은 크루아상과 커피, 바게트를 먹을 수 있는 곳이 가까운 곳에 있었어. 프랑스에 간다면 코와 입만 있으면 충분해. 아, 음식이 충분히 들어갈 위장도.
* 어느 뉴요커의 음식 예찬 맛있는 인생 이야기 - 크루아상이여, 다시 한 번! 참조.
내가 갔던 곳은 아주 한적하고 조용한 마음이었는데,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친해서 얼굴을 전부 다 알고 있어 새로운 사람이 오면 금방 여행자라는 걸 알아차리지. 거기다 그곳은 붉은 벽과 건축물이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반달 모양인 크루아상이 가장 맛있었어. 프랑스는 바게트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크로아상이야.
하아…… 그 진열장에 오븐에서 막 나온 크루아상의 갈색은 마치 사람으로 치자면 햇볕에 태운 것처럼 노릇하고 향긋한 냄새까지. 사 먹지 않고는 못베기게 만들지. 주인장이 봉투에 담아주면서 “아직 뜨거우니 조심하렴.” 하며 입구를 열어 건네주시는데 손에 느껴지는 크루아상의 열과 냄새가 거리에서 호텔 엘리베이터로 퍼지기까지 10초도 안 걸려. 그 냄새를 맡고도 참는다는 건 정말 제정신으로 할 일이 아니지. 내 방으로 돌아와 겉옷도 벗지 않고 한 입 맛봤는데. 내 세상에 그렇게 강한 쇼크는 없었어. 왜, 만화에서 벼락을 맞은 것처럼 머리가 삐죽, 삐죽 서고 온몸에 감전된 듯한 느낌 말이야.
층층이 겹친 페이스트리에서 진한 버터와 과자처럼 파삭, 소리를 내며 입안으로 들어오는데, 이건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몰라. 내가 그때 그 맛 때문에 제빵사가 된 거지.”
“우와~”
“우와!”
타나와 보라는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바벨이 말한 페이스트리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잼은?”
“잼? 막 만든 빵에 잼이 필요 없어, 그대로 먹는 게 제일 맛있거든. 나는 매일 아침 여행하러 와서 늦잠을 자는 부모님을 졸라 혼자 아침 식사로 크루아상을 맛보았지. 어떤 날은 2개로도 모자랐고 또 어떤 날은 4개를 먹어도 만족스럽지 않았지. 부모님께도 사드린 적이 있었는데, 부모님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으셨는지 한 번 드시고는 그다음부터는 입도 대시지 않으셨어. 그 뒤로도 몇 번 가족 여행으로 유럽을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그때 맛본 크루아상만큼 맛있는 건 없었어.”
“직접 만들어 봤어?” 타나가 말했다.
“물론이지. 제빵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해봤지만, 그때 그 맛을 내지는 못했지. 경력과 기술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똑같은 맛을 내기란 어렵거든. 난 몇 번이나 실패를 맛봤지. 그리고 본격적으로 유명한 빵집에서 판매와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어. 물론 갓 나온 빵들을 조금씩 맛보면서 말이야. 판매하는 사람은 당연히 자신의 가게에서 파는 빵들 맛을 전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거든.”
보라는 바벨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고 그곳을 상상하고 떠올렸다. 멋진 운하와 붉은 벽돌집 그리고 창문을 열면 이국적인 도시의 풍경과 버터 향을 아침마다 맡을 수 있다니. 이보다 낭만적이고 완벽한 인생이 어디 있을까.
“뭘 상상하고 있어, 보라.”
“바벨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어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보라는 말했다. 그의 양 볼은 발그레했고 여행의 설렘과 들뜸이 그들에게도 느껴졌다.
“보라는 유럽 여행 다녀온 적 있어?”
“아뇨, 타나도 알다시피 우리 집은 빛 때문에 엄두도 못 냈죠. 20대 때 남들 다 가는 유럽이나 여행을 왜 나만 못가나 한탄한 때도 있기는 했고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가봐야지 하다가 끝났죠.”
“오, 아쉽겠다. 20대 청춘을 이 죽은 자들과 함께했으니…… 지금이라도 대장에게 물어보고 다녀와.”
“아뇨, 지금은 관심 없달까?”
“왜? 흥미가 없어?”
“아뇨, 그건 아닌데……뭐랄까,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아무튼 여행 이야기를 듣는 건 좋지만 가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사실, 동생들이 유럽에서 살아서 오라고 하기는 했지만, 인종차별이니 음식 맛이 안 맞아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뭐랄까. 환상과 낭만은 가지고 싶은데, 내가 그 일을 당하는 건 싫어서 가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전 직접 가보는 것보다 지금처럼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상하는 게 더 좋은걸요. 왜 소설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라지만 우리 모두 사랑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알잖아요. 오해도 쉽게 풀리지 않고 대화를 하면 할수록 꼬이듯이.”
“흠,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 드라마나 소설은 오해가 생겨도 서사가 꼬여도 끝에선 반드시 풀리니까. 세상이 그렇게 쉽게 악을 처벌하고 선은 좋은 곳으로 선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웬일로 티나가 어른스러운 말을 한다.
“맞아요. 아무튼 저는 남의 여행 이야기에서 모험과 즐거움 그리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게 좋아요.”
“이런, 천성 작가네. 너 진짜 이참에 네 이야기로 소설 써 봐.”
타나의 말에 보라는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전 아직 경험이 없는걸요.”
“경험이 없어도 이야기는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어. 경험이 많다고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야. 네가 말했듯이 여행도 막상 가보면 별거 아니거든. 후룩.” 바벨이 홍차를 마시며 말했다. “유럽에 대한 환상은 누구에게나 있지. 가보지 않은 곳일수록 더더욱 환상을 품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나야 좋은 양부모 밑에서 살았지만 내 주변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았어. 학교에서는 틈만 나면 괴롭힘을 당했고 직장에서도 가장 힘든 일을 도맡아서 해야 했지. 사람들은 유럽이 혈연·지연·학연 안 따진다는데 개소리지. 걔네는 자녀가 대학원서 넣는 곳이 부모가 그 학교 출신이면 가산점도 받아. 취업도 추천장 있으면 그냥 들어갈걸. 아무튼 나도 취업하려고 동아리 들어가고 인맥 관리 빡세게 하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어느 정도 내 몫을 하고 먹고살 만해지니 내 가게를 운영하고 싶었는데, 알다시피 유럽 물가가 오죽 비싸야 말이야.” 바벨의 미간에 내 천 자가 새긴 채로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보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어느 나라든 먹고 살기 빠듯하긴 매한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 손만 닿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지만 가진 않는 것은 환상은 늘 환상인 채로 내버려뒀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는 그였다. 그들의 저승사자가 된 스토리는 늘 흥미롭고 재밌었다.
그러고 보니, 여주랑 애영이랑 배낭여행은 한 번 해볼 걸 이라며 아쉬운 생각이 드는 보라였다. 그나저나 여주랑 애영은 잘 지내나, 오랜만에 연락 좀 넣어 볼까나. 보라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
“여주가 무슨 일 있는 거 같다고?”퇴근길에 보라가 핸드폰을 바짝 귀에 대며 말했다.
“응. 며칠 전에 우리 집에 왔는데 뭐랄까 평소랑 달라보였어.”
“달라보였다고? 어떻게 달라보였는데?”
“글쎄, 콕 집어서 말은 할 수 없는데…뭔가 달라진 거 같아. 너 여주에게 연락해 봤어?”
“어……아니. 아직.”
“그럼, 네가 전화 해 봐. 내가 전화를 아무리 해도 안받네.”
“어어. 알았어. 내가 해 볼게.”
애영과의 통화를 끊내고 보라는 여주의 번호를 눌렀다. 한참의 신호가 가고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자, 보라는 이상하네, 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붙잡은 핸드폰을 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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