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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마녀의 솥

[요리] 여름 11편, 바질페스토 저리 비켜! 깻잎페스토가 잔뜩 들어간 크림 떡볶이가 진리다.

 

 

 

 

여름 11편, 바질페스토 저리 비켜! 깻잎페스토가 잔뜩 들어간 크림 떡볶이가 진리다.

 

 

 

 

그 애의 목소리는 나른하고 게을러서 듣고 있다 보면, 춘곤증처럼 잠이 밀려온다. 애영은 여주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여름이 오면, 가지가 예쁜 보라색으로 변한다. 이때 가지를 따서 반을 가르고 먹기 좋은 크기로 큼지막하게 썬 가지를 찜기에 넣고 쪄준다.

잘 익은 가지는 한 김 식히고 참치액, 후추, 들기름으로 조물조물 무친다. 그리고 부드러운 가지를 쌀 밥 위에 얹어 먹으며 흐물거려 물 없이도 꿀떡꿀떡 넘어간다.

 

찜기에 다른 양배추나, 호박잎을 쪄서 쌈장이랑 같이 곁들어 먹어도 맛있다. 양파, 고추, 다진 마늘, 거기다 기름기 쪽 뺀 참지를 넣으면 고기식감이 나기도 한다. 아니면, *가지 밥을 해먹어도 좋다. 솥에 기름 두르고 파를 넣어, 향긋한 파 향이 올라오면, 반달모양으로 썬 가지를 넣고 숨이 죽을 때까지 볶아준다.

 

* 백종원의 가지 밥.

 

간장을 가장자리에 두른 뒤 손목의 스냅으로 골고루 웍을 앞뒤로 흔들어 준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있지만, 좀 더 주린 배를 참고 기다리면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기가 막힌 쇼킹한 맛을 맛볼 수 있다.

 

가지에서 물이 나오니 평소보다 물 양을 줄이고 미리 뿔린 쌀을 앉힌 뒤 그 위에 잘 볶은 가지를 넣고 잡곡에 맞춘 뒤 취사를 눌러주면 끝!

 

취익, 하고 증기를 뿜어내는 그 냄새까지도 맛있는 냄새와 함께 밥솥 뚜껑을 열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잘 익은 가지와 밥을 한데 뒤섞는다.

주걱에 묻은 밥을 한 입 맛보는 순간, 맛있다는 말이 얼마나 부족한 표현인지 깨닫게 된다. 아, 그 살캉하고 부드러운 가지가 밥과 한데 어우러져 반찬이 없이도 충분한 한 끼를 맛볼 수 있는데….

 

“가지 밥은 한 번 맛보면 가지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발길을 멈춘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지.”

“야, 기여주. 그 딴에 덥고 배고파 죽겠는데, 먹는 얘기 좀 그만해. 해줄 것도 아니면….”

“그래. 나도 얘기 하다 보니, 넘 배고파서 미칠 지경이야. 아니, 잠깐 나 여기 손님으로 왔잖아.”

“손님으로 왔어도 상도덕을 지키지 않으면 무뢰배지.”

“무슨, 먹을 거 얘기했다고 무뢰배까지….”

 

여주와 애영은 에어컨 아래에 누워 더운 땀을 식히고 있었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뜨거운 열기로 꼼짝도 하기 싫은 여름은 여주에게도 쥐약이었다.

 

“자, 자. 두 분 다 그만 일어나시고, 시원한 매실차 한 잔씩 드세요.”

 

애영의 남편, 나태곤 이였다. 여주는 지금 친구인 애영의 집에 놀러와 있다. 동생인 시나는 친구 세림과 숙제한다며, 카페로 가서 할 일도 없던 여주는 애영의 놀러오라는 전화에 냉큼 애영의 집으로 달려갔다.

30분 거리에 살고 있는 애영은 여주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여주는 태곤이 타준 새콤한 매실차를 한 입 맛보니 갑자기 입맛이 확 돌고 속이 시원해졌다. 시계를 보니 12시다.

 

“벌써 점심시간이네. 배고프다. 뭐 먹을 거 없냐.”

“그래, 나도 매실차 마시니 뭐 먹고 싶다. 읏챠. 오늘은 뭐 해 줄 거야, 자기?”

“음, 글쎄, 너무 더우니까 냉국이나 이런 것보다는 간단하게 자기 좋아하는 떡볶이 해먹을까?”

“아, 더운데 떡볶이는 에바 아냐?” 여주가 매실차를 깔끔하게 비우며 말했다.

“그런가? 그럼 열무국수 해먹을까?”애영이 말했다.

“자기, 그건 그저께도 먹었잖아. 너무 찬 것만 먹으면 배탈 날 수 있다니까. 흠. 그럼 이열치열하게, 삼계탕 해먹을까요? 사논 닭도 있겠다.”

“음, 그건 너무 집이 더워질 거 같아, 별로. 아무리 더운 여름이고 이열치열이라지만, 땀 뻘뻘 흘려가며 먹고 싶지 않아. 난. 그리고 …에어컨 지금도 약한데.”여주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럼 다 됐고, 처음에 결정한 떡볶이 먹자.”

 

결국 돌고 돌아 떢볶이라고? 여주의 표정을 본 애영은 매실차를 다 마시며 말했다.

 

“여주, 너 우리 자기가 만든 떡볶이 한 번도 안 먹어 봤지?”

“뭐, 그렇지.” 여주가 빈 잔을 만지며 말했다.

“그럼, 이번 기회에 한 번 맛보고 가. 진짜 맛있어. 파는 것보다 더 맛있다니까. 자기, 오늘도 맛있게 부탁해~.”

“알았어, 나만 믿어.”

 

팔을 걷어붙이며 일어나는 태곤을 보며 여주는 말했다.

 

“둘이 깨 볶고 사는 거 보니, 약간 부럽기는 하다.” “그럼, 너도 이참에 결혼해.”

“야, 환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걸 알거든. 그리고 태곤 씨 같이 키 크지 자상하지 능력 있는 유니콘은 현실에서 찾기 어렵거든. 아무튼 결혼은 사양이야.”

“하긴, 그건 그래.”

“뭐야. 결국 지 자랑이냐. 근데, 너 성격 태곤씨 만나고 많이 변한 거 알아.”

“뭐, 시간이 약이라고 성격이 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리고 이제는 좀 바뀌기도 해야 하고.”

 

학창시절 내성적인 애영은 소외되고 늘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큰 덩치에 소심한 성격, 거기다 우물대는 말버릇에 똑똑하지 않은 애영이었지만, 그가 일생일대에 가장 잘 한 일은 바로, 웹툰 작가가 된 일이었다.

 

애영은 늘 자신의 미래를 불안해했다. 자신이 제대로 직장을 다니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애영은 회사생활이 영 맞지 않았다. 큰 덩치와 큰 가슴 때문에 늘 상체를 구부정하게 다녔고 곰 같이 꿈뜨다며, 매일 같이 갈구는 상사의 괴롭힘과 성희롱에 애영은 결국 눈물을 흘리며 회사를 관두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몇 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을 보냈었다.

 

그리고 30이 되기 전에 죽기로 마음먹은 애영에게 여주는 설득도 해보고 애원도 해보고 화를 내보기도 했지만 죽음을 결심하고 각오한 그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이미 그의 방에는 밧줄과 수면제 등등 죽음의 물건들이 즐비해 있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30이 된 애영은 옷걸이에 밧줄을 걸고 목을 걸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죽으려고 하니, 너무 겁나고 무서웠다. 이 밧줄이 목에 조이면서 너무 고통스럽게 죽을 걸 생각하니, 끔찍했다. 이번엔 수면제를 과다 복용할 까 생각했지만, 얼마나 먹어야 할지 모르겠고, 만일 실패하면, 위세척과 엄청나게 망가진 신체를 가지게 된다는 글이 떠오르며, 몸이 덜덜덜 떨려왔다.

 

살고 싶은 건 아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재에 애영은 처음으로 후회라는 것을 했다. 그렇게 30이 된 애영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죽었으리라 생각해던 애영이 살아있자 여주는 애영을 정신병원에 데리고 갔다. 거기서 애영은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라는 병명을 진단 받았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온 둘은 양선지 해장국을 두 그릇 시켰다.

 

애영은 음식에 손도 못대고 있었다. 여주가 왜 안 먹냐고 묻자, 좀 전에 창구에서 여주가 대신 돈을 지불한 게 면목 없다고 말했다.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여주는, 네가 죽어서 세상에 없는 것보다 너를 위해 돈을 쓸 수 있는 게 기쁘다는 말에 애영은 눈가가 시큰해지는 걸 느꼈다. 밥을 다 먹고 헤어졌다. 1회용 동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뒤로도 여주는 병원이 갈 날이 되면, 꼬박꼬박 연락을 해왔다.

 

애영의 부모님에게도 대신 연락을 드려, 잘 지내고 있다고 안부전화를 하기도 했다. 이 사실은 애영이 결혼 식 날 애영의 부모님이 여주에게 말하는 걸 들고 애영은 하마터면 마스카라가 시꺼멓게 번진 채 결혼식을 올릴 뻔했다.

 

아무튼 어느 날 애영이 여주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정말 쪽팔린 말이었지만, 학원을 다니게 돈 좀 빌려달라는 말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때 그 말은 쪽팔리지만, 말하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랬더라면, 자신이 웹툰 작가가 될 수 있을 리 없었을 테니까.

 

여주는 흔쾌히 500만원이라는 거금을 주었고 애영은 그간 오며가며 보았던 병원 근처에 있는 웹툰 학원에 등록해서 6개월을 그곳에서 열심히 배웠다. 애영은 학창시절에 그림을 꽤 잘 그렸기에 그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지 않으면서 싸울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자 무기였다.

 

애영은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열심히 그림을 꾸준히 초록창의 사이트에 올렸고 공모전을 연다는 소식에 응모했다 독자 인기상을 받으며 웹툰작가로 데뷔하게 됐다. 학창시절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무겁지 않고 부드럽고 아름답게 써내려간 애영의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켰고, 천천히 인기와 사랑을 받게 되었다. 애영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두 번째도 일상 웹툰으로 자신이 겪은 회사 이야기를 그려내며,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의 공분과 애정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애영의 남편 태곤을 만난 것도 이 때쯤이었다. 태곤은 애영의 웹툰 1호 팬으로 도전 만화가에서부터 애영의 작품을 응원하며 꾸준히 봐 온 독자였다. 그도 원래는 웹툰 작가를 꿈꿨지만, 스토리텔링과 그림에 영 소질이 없어 그만둔 케이스였다. 지금은 평범한 S전자 회사원 과장으로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태곤은 애영의 열렬 팬으로 작가 사인회에서 둘은 첫 만남을 시작으로 점점 팬과의 관계에서 친구, 조언자, 남자친구, 연인으로 발전해 1년만에 결혼에 골인한 케이스였다.

 

애영은 태곤을 만나면서 당시 여전히 자신의 큰 덩치를 맘에 안 들어 했지만, 태곤의 꾸준한 애정공세와 사랑에 지금은 자신의 몸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게 되었다. 그는 애영이 먹는 것만 봐도 행복하다며 여전히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3년 차 부부였다. 거기다 요리면 요리 일이면 일 운동이면 운동 무엇 하나 게을리 하지 않는 남자였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지 않고 잣 한 줌을 볶아준 뒤 식히고 믹서기에 깨끗이 씻은 깻잎, 상추는 조금만, 소금, 파마산치즈 가루, 마늘(or 다진 마늘), 올리브오일, 식힌 잣을 넣고 갈아준다.

 

잘 안 갈아지면, 숟가락으로 한 번씩 뒤적여주거나 올리브오일을 더 넣어 준다. 숟가락으로 밑바닥부터 잘 뒤적여서 맛을 본다. 견과류의 고소함과 깻잎의 맛, 살짝 느끼하면서 치즈와 소금의 짭조름한 감칠맛이 느껴지면 성공이다.

 

보관은 뜨거운 물에 소독한 유리병에 담고 그 위에 올리브오일을 부어주면 된다. 올리브오일을 넣어주면 음식의 산패되는 걸 막아주며, 오래 보관해 먹을 수 있다.

 

깻잎 페스토는 식빵에 그냥 발라 먹어도 좋다. 애영은 식빵 한 쪽 면에 페스토를 발라 여주에게 건넸다. 음, 맛이 강렬한데. 마늘 맛도 느껴지고, 고소하고, 느끼하면서 짭짤하기까지. 뭐, 오미자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다양한 맛을 나지?

 

“야, 맛은 있긴 한데… 근데, 이거 맛이 센데, 떡볶이에 어울릴까?”

“그러니까, 크림이랑 어울리는 거지. 강한 거엔 강한 걸로 누른다. 몰라~?”

 

페스토는 시간이 지나도 맛있으니, 2~3일 전에 미리 만들어 두는 게 시간 절약에 좋다. 또 바쁜 아침에 식빵에 발라먹거나 냉파스타를 해먹거나 샐러드 해 먹어도 좋다. 웍에 생크림과 우유를 같은 비율로 넣고 떡은 한번 흐르는 물에 씻고 비엔나소시지는 칼집을 내준다. 새우 버섯, 브로콜리나 청경채를 넣어 여러 가지 색을 내서 골라 먹는 재미를 주는 것이 좋다.

 

브로콜리는 푹 익혀 먹고 청경채는 마지막에 넣어 씹히는 식감을 준다. 생크림과 우유는 빨리 끓어오르니, 재료 손질이 늦는 사람이라면, 약 불로 틀어놓거나 재료를 미리 준비해 놓는 게 좋다.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오면, 만들어 둔 깻잎 페스토를 넣고 잘 저어준다. 부글부글 끓으면 떡과 소시지, 새우를 넣고 다시 끓어오르면 파마산 치즈와 슬라이스 치즈 한 장, 그리고 청경채를 넣어준다. 이때 국물이 너무 많이 없으면, 우유를 반 잔 더 넣어준다. 마지막으로 간을 본 뒤 조금 심심하다 싶으면 페스토를 좀 더 넣어 간을 하고 접시에 예쁘게 담아주면 맛있는 깻잎 페스토 떡볶이가 완성된다.

 

검은 접시에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보며, 여주의 눈이 반짝 빛난다. 생크림과 뒤섞여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향기에 여주는 재빨리 식탁 앞에 앉아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떡볶이와 국물을 후후, 불어서 한 입 먹었다.

 

‘와, 존나, 맛있네. 생으로 먹었을 때보다 더 맛있다.’

 

쫄깃쫄깃한 떡과 푹 익어 옆구리가 터진 소시지가 뽀드득 소리를 낸다. 거기다 청경채는 또 왜 이렇게 국물에 잘 조려져 맛있는 거람.

 

“야, 이거 엄청 맛있다.”

“그치, 그치. 여기에 스파게티 면이나 찬밥 넣으면 리소토 된다.”

“세상에, 그 말을 들으니, 안 먹고 갈 수가 없잖아. 집에 밥 있지?”

“당근이지. 너 밥까지 다 먹고 가야 해.”

“그걸 말이라고.”

 

여주의 접시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국물까지 깔끔하게 흡입한 여주는 떡볶이 한 그릇을 더 먹고도 밥까지 야무지게 말아먹었다고 한다.

여주가 떠나고 애영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돌아왔다.

 

“뭔가가 있는데, 왜 말을 안 할까.”애영이 빨래를 개고 있는 태곤에게 말했다.

“누구? 여주 씨.”

“응. 뭔가 걱정거리가 있는 거 같단 말야. 근데, 말을 안 해.”

“학창시절도 아니고…또, 고민을 나눌 정도로 심각한 사안은 아닌가 보지.”

“옛날엔 별 거 아닌 거라도 고민을 나누곤 했는데. 어? 아니다. 여주는 맨날 우리 고민 들어줬는데, 우리는 한 번도 여주 얘기를 들어 준 적 없었네. 해도 통보로 말하고 끝냈으니.”

“통보?”

“뭐, 새엄마가 생겼다. 여동생이랑 함께 살게 됐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 그건 너무 했다. 아니면, 여주 씨 마음을 헤아려 줄 충실한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있으면 좋을 텐데.”

“뭐야, 그럼 여자들끼리는 그런 건 안한다 이거야?” 애영이 도끼눈을 뜨고 물었다. 태곤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애영은 마음에 스크래치는 이미 입었다.

“무심하긴…. 한 번 씩 그렇게 무심하게 말할 때마다 조금 속상한 거 알지.”

“아, 미안. 나는 자기가 여주 씨를 되게 아끼는 걸 알고 있어서 나름 조언해 준건데.”

“됐어. 지금은 그 조언 필요 없을 거 같아.”

“아, 자기야~ 미안하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