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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마녀의 솥

[요리] 가을 12편, 지글지글 기름에 굽는 전은 언제나 진리다.

2부

마녀의 솥

 

 

 

 

전류는 신비로운 세계다. 기계는 전류를 추진 장치로 움직인다. 전류는 아주 가끔 사람들을 다른 차원으로 인도한다. 

휴대용 핸드폰이 생긴 뒤로 전파를 타고 가는 게 용이해지기는 했지만, 우리는 늘 지하철을 이용한다. 왜냐하면 핸드폰은 비정상적인 전파 루트라 엉뚱한 곳으로 떨어질 수 있지만 지하철은 늘 정확하게 원하는 곳에 당도하기 때문이다.

 

 

 

 

가을 12편, 지글지글 기름에 굽는 전은 언제나 진리다.

 

 

 

 

단호박전은 미리 채만 써는 수고로움만 던다면 금방 뚝딱 만들 수 있다. 보라는 한쪽 어깨에 휴대폰을 걸치고 동생과 수다 중이었다. 미국에서 열심히 변호사와 건축가로 일하고 있는 두 동생은 보라의 자랑이었다. 유학까지 다 보내고 버젓이 제 할 일들을 하는 녀석들이 뿌듯하다.

 

“지금 뭐하긴, 야식 준비하지. 단 호박전. 너희 어릴 때 이거 무지 좋아했잖아. 뜨거울 때 먹으면 더 맛있고, 식으면(씩 웃으며) 네가 남의 입에 들어갔다 온 것 마냥 축축하다고 그랬잖아. 깔깔. 지금와 생각해 보면 더러운데 웃겨. 캬캬. 그래~ 아이고, 많이 안 해.”

 

말과는 다르게 테이블 위에는 막걸리와 전 4장이 올라와 있다.

 

“아하하… 그래, 그렇다니까. 애영이랑 여주 여전히 잘 지내지. 나중에 한국 오면 다 같이 술이나 적시자고. 응, 그래 끊자.”

 

마지막 장을 접시에 휘리릭 올리며 보라는 막 호박전을 먹으려는데, 삑- 소리를 내며 핸드폰이 경고음을 낸다. 아, 지금은 안 돼. 제발 아니길.

하지만 보라의 바람이 무색하게 이번에도 역시다. 폴더를 열어 보니 긴급이라고 큼지막하게 빨간 글자로 쓰여 있다. 보라는 고개가 힘없이 숙여진다.

 

‘으~ 내 야식! 이거 식으면 맛없는데…. 힝. 아냐. 딱 한 입만 먹자!’

 

하지만 그마저도 한 번 더 울리는 핸드폰 알람에 보라는 결국 집 밖을 나설 수밖에 없다. 애써 축 처진 기분을 끌어 올리며, 빨리 돌아와서 먹으면 되겠지. 희망 회로를 돌리는 그였다.

 

“자, 오늘도 일하러 가볼까~”점퍼를 목까지 끌어올렸다.

오늘은 지하철이 아닌 그간 열심히 달리기로 단련한 두 다리를 믿어볼 셈이다.

유령 컴퍼니 회사의 편집자지만 말단이나 마찬가지인 보라는 학교로 달렸다. 담장을 훌쩍 넘어 안으로 들어온 보라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아슬아슬했다.”

 

휴대폰 전파를 이용해도 되지만 아직 보라는 휴대폰 전파를 타고 다니는 게 익숙지 않았다. 자신뿐만 아니라 팀 동료들도 몇 번이나 멀미를 느꼈고, 지난번에 타나는 지각을 면하기 위해 휴대폰 전파를 이용했다가 대장의 머리에 토를 하는 바람에, 우리 팀은 휴대폰 이동이 완전 금기 돼 버렸다.

 

‘으~ 그게 내 머리에 쏟아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지.’

 

보라가 운동장 한 켠에 마련된 쉼터로 가니, 수군대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벌써 팀원들이 모여 있다. 우리 팀은 까불이 타나, 오븐 폭발로 한쪽 눈과 다리가 잃은 제빵사 바벨 그리고 카리스마와 결단력이 높은 고양이 대장과 나, 네 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라는 10살 때 버스 추돌사고로 저승의 문턱에 한 번 갔던 적이 있었다. 바리데기가 수명이 맞지 않는 자를 데려 왔다며 신참저승사자를 혼내고 이승으로 돌아가는데. 갑작스레 악령들의 습격을 당했다.

 

저승사자는 보라를 놓쳤고 악령들의 먹잇감이 될 뻔한 보라를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대장이 구해줬다.

그런데 하필,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죽은 자가 산자의 목숨을 살리는 바람에 큰 빚을 지게 된 보라는 그날부터 어쩔 수 없이 저승사자의 일을 돕게 되었다.

 

저승사자가 되고 나서 1년 뒤 몇 가지 알게 된 건 그때 보라를 담당했던 저승사자는 신입이었고 완전히 죽지 않은 영혼은 (보라는 맡지 못했지만) 과일과 정향(금속성 냄새)이 박힌 고기의 신선한 육향을 내뿜어 악령들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는 것이었다.

 

“뭘 실실 쪼개고 있냐, 꼬맹이.”

 

타나였다. 그는 색색 거친 숨을 내쉬며 쉰 목소리를 가졌다. (목에 자주 손을 넣고 구토를 해서, 숨 쉬는 게 버거운지 타나는 늘 목소리보단 색색 거리는 숨소리가 컸다.) 20살의 젊은 나이에 거식증과 역류성 식도염으로 제 몸을 갉아 먹다 결국 자살해 저승사자가 된 그였다.

 

“꼬맹이라뇨. 제가 타나보다 인간 나이로 치면 훨씬 더 많거든요.”

“어머? 그래~ 우리 꼬맹이~ 나보다 나이가 더 많다니. 늙어서 좋겠네~ 그런데 아직 키는 나보다 작잖아” 히죽거리며 타나가 말했다.

“윽!”

타나는 이렇게 한 번씩 깐족거렸다. 그의 장난은 오직 대장만이 막을 수 있었다.

 

“시끄러워.”

“어머, 우리 늙은 대장 이제야 깨어났네. 그렇게 오래 잠들면, 언젠가 영원한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니…. 아야~ 왜 때려!”

“씁!”

“힝~”

“타나, 그리 버르장머리 없이 굴었다간 이 지팡이로 엉덩이를 때려줄 테야!”

“아아- 바벨까지! 꼬맹이 너 정말 네 편을 많이 만들어 뒀구나~ 힝.”

 

타나가 적을 많은 쌓은 건 생각도 안 하고. 쩝.

 

“그래, 오늘 의뢰는 뭐야?”

“자살.”

“윽! 불쾌해! 난 이번 일에서 빠질래.”

 

타나가 질색하며 말했다. 대장은 한 번 더 타나의 팔을 탁 소리 나게 때렸다.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타나는 허공에서 뒹굴며 엄살을 부렸다.

타나는 본인도 자살 했으면서 자살자들을 혐오했다. 마치 자기 죽음과 그들의 죽음은 다르다는 듯이.

 

“이번 자살자는 이 학교 학생으로 학교폭력이다.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가 된 경우인 특이한 사례지. 나와 보라, 그리고 바벨과 타나가 한 팀이 돼, 그 영혼을 쫓는다. 아직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지 못했으니, 섣불리 다가가 자극하지 말도록.”

 

학교 안을 샅샅이 스캔하고도 영혼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장은 학교 옥상으로 올라가 마을 곳곳을 흩어 봤다. 뭔가를 감지하면 대장이 내게 지시를 내리고 나는 재빨리 이탈 영혼을 포획하면 된다. 날렵한 턱을 치켜드는 대장을 보며, 보라는 속으로 너무 귀여워~ 복슬복슬한 까만 털과 달을 녹여 빚은 것 같은 황금빛 눈동자가 매혹적이라 황홀하게 쳐다봤다.

대장은 늘 바벨의 무릎에 누워 낮잠을 즐겼다. 언젠가 한 번 개다래나무로 대장을 무릎에 앉히려고 했지만, 보통 고양이가 아닌 대장은 질색하며 바벨의 무릎으로 훌쩍 올라갔다. 타나가 그 모습을 보고 깔깔 대기는 했지만.

 

“집중 안 하고 딴 생각을 하는 거야, 꼬맹이.” 어느새 내려온 대장이 사뿐한 몸짓으로 타나의 어깨에 안착했다.

“앗. 네! 네! 아뇨. 대장 왜요? 나타났나요?”

“아니, 여기엔 없군. 멀리 간 게 아니어야 할 텐데.”

 

이번 이탈자는 묘하게 행방이 묘연했다. 빨리 저승으로 데려가야 하는데.

죽은 영혼은 막 죽으면 회색에서 점점 흰 빛으로 변하는데, 하얗게 변할수록 영혼의 소멸을 의미한다.

거기다 저승으로 때맞춰 가지 않으면 영혼의 소멸 또는 악령이 되고 만다. 보라도 몇 번이나 그런 사례를 보아왔다. 끔찍한 소리를 내며, 검게 변해버린 영혼은 눈물을 흘리며 괴롭게 울부짖다가 결국 우리 같은 저승사자들 손에 죽는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채로.

 

“어? 대장 저쪽에 고양이들이 있어요.”

“좋아. 저들에게 한 번 물어보자.”

 

대장은 담벼락으로 훌쩍 올라가 고양이와 대화를 나눴다.

 

“야옹~.”

“야옹~”

“미야옹~ 야아옹.”

“야옹. 야옹.”

 

으~ 존나 귀여워! 뜻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야옹대는 게 따라 하고 싶다.

 

“야옹~ 흠. 이쪽으로 1시간 전에 지나갔다는군. 색은 회색이지만 어서 빨리 뒤 쫓지 않으면 안 되겠군.”

“넵.”

 

그때 보라와 대장의 무전기가 삑 - 하고 울렸다. 받아 보니, 타나와 바벨이 그 영혼을 뒤쫓고 있다고 했다.

순식간에 대장은 몸을 크게 부풀어 커졌다.

 

“시간이 없으니 타라.”

“네!”

 

대장의 등에 올라탄 보라는 휙 휙 하고 바뀌는 전경과 부드러운 대장의 털을 꽉 잡았다. 대장 목덜미에서 푹 익은 자두파이 향과 상큼한 레몬 냄새가 났다.

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포승줄에 묶여 영혼이 눈물 흘리고 있었다. 영혼은 중학생으로 돼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대장의 등에서 내린 보라는 타나의 옆에 섰다.

 

“흑. 흑. 억울해. 나만 괴롭힌 것도 아닌데. 흑.”

 

억울. 참! 이번에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됐다 했지. 근데, 뭐가 억울하다는 걸까.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사연이 있는 걸까?

바벨은 불편한 다리를 지팡이로 짚고 있었고 타나는 자신은 솜씨를 보라며, 짜란~ 하고 웃으며 말했다.

상반되는 이 상황 속에 대장은 소녀의 앞에 섰다. 소녀는 대장을 보자, 단추처럼 작은 눈이 반짝하며 크게 떴다.

 

“들어줄 테니 얘기해 봐.”

“얘기하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달라지는 건 없지만 맘 편히 성불할 수 있지.”

 

대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잠시 고민하던 소녀는 입을 조그맣게 벌렸다.

 

“내가 가해자 중 한 명인 것은 맞지만, 진짜 주동자는 따로 있어요. 진짜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고 그 지시에 따른 나만 왜 처벌받아야 해요. 이 세상이 잘못 돌아가는 게 왜 내 잘못이야. 억울해! 분해! 너무 억울하다고요!”

“….”

“요즘 꼬맹이들은 정말 별 게 다 분하네. 키득키득.”

“그러게. 나 때는 생각도 못 할 일이지.” 타나의 말에 바벨이 공감한다며 대꾸했다.

“당신들이 진짜 저승사자라면, 신도 당연히 존재하겠지.”

“어머~ 그럼. 당연하지.” 타나가 이를 활짝 드러내며 말했다.

“그렇담 신에게 가서 전해 줘. 이용당한 영혼이 여기 억울하게 죽었다고! 억울한 영혼이 복수를 꿈꾸는 게 뭐가 그리 나쁘냐고 말해줘.”

 

보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녀의 발언에 허, 하고 짧은 한숨 소리를 냈다. 학교폭력이 점점 성인 범죄만큼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태도라니.

 

“타나, 어디에 숨어 있었어. 이 녀석?”

“이 건물 3층.”

“….”

“왜?”

“거긴 또 다른 방관자이자 가해자의 집이야. 너. 복수하려 했군.”

 

보라는 회색 콘크리트 빌딩을 올려다보며 재빨리 핸드폰으로 검색했다. 좀 전까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피해자 행세를 하더니 이제는 실실 웃고 있었다. 정향 냄새가 강하게 난다. 윽. 보라가 코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리자, 내 어깨 위로 올라온 대장은 숨쉬기 편하게 자기 목덜미를 기꺼이 내어준다. 보라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며 호흡을 진정했다. 보라가 이제 괜찮다며 대장의 목덜미를 매만지자 간지러운지 대장은 수풀레처럼 풍신하게 등을 부풀렸다 꺼트렸다.

대장의 말처럼 여기가 또 다른 가해자의 집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대장 이상해요. 이 집은 저 소녀의 절친이라 뜨는데요?”

 

보라가 핸드폰으로 정보를 검색한 걸 보여줬다. 대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소녀는 여전히 히죽거렸다.

 

“타나, 여기 왔을 때 상황이 어땠지?”

“음… 아! 생각났다. 저 녀석 악몽을 만들고 있었어. 괴로워하고 또 괴로워하라면서.”

“….”

“내가 왜 억울하게 혼자 가.”

“….”

“내가 왜 혼자 가냐고! 절대 혼자 못가지. 내 억울한 거 다 밝히고 갈 거야. 난 정말 억울해. 농담으로 시작된 것인데…, 어느새 내가 학폭 가해자가 되어버렸어. 아아- 최악이야."

"네가 하는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고 말하는 거냐."

"그래.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몰랐어. 그저 장난이었단 말이야. 아- 씨.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난 정말 억울한 일을 당했어. 빌어먹을. tv에서 보던대로야. 이 세상은 동물의 왕국이랑 똑같아. 가해자가 힘이 세니 나 같은 연약한 동물들은 다 피해 입는 거야. 신도 이해할 걸. 나 같은 자들은 죽어야 복수 할 수 있다는 걸.”

"아니. 그건 아니야." 바벨에게서 파프리카 가루의 매운 향신료 냄새가 났다. 저승사자들이 진짜 화가 났을 때 나는 냄새였다.

"뭐래."

"너, 네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몰랐다고 했지. 그 말은 책임 회피하는 거야. 사람이라면 어른이든 아이든 구분 없이 자기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해. 너 정말로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몰랐니."

"몰랐어. 아니… 하지만 알았다 해도 나는…나. 나는. 하지만 나도 억울하단 말이야. 다시 말하지만, 처음에는 그냥 장난으로 시작된 것이었어. 그게 상황이 점점 심각해져 나중에는 타깃이 나로 바뀌었고 괴롭힘이 심해졌어. 한번은 내가 한 적도 없는 일로 걸고넘어지더니 뒤에서 비난하고, 까 내렸어!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대는 게 정말 꼴사납고 정말 화가 나."

“이제 보니, 너 반성이 요만큼도 없구나. 너~." 

“니가 뭘 안다고 떠들어! 삐쩍 꼴아터진게.”

“깔깔. 어머 무셔라. 근데 대장. 애 몇 대 치면 안 돼.”

“안 돼.”

“으-흠. 열 받아~. 꼬마야 이따가 보자.” 타나는 깐족대며 말했다.

“진짜로 억울해. 흐윽. 나에게 죄가 있다면 우리 부모가 부자가 아니라는 거? 그리고 피해당한 걔도 부자였으면 이런 일 안 당했을걸? 거기다 걔는 뭐가 그리 억울해서 폭탄까지 던지고 전학까지 갔담. 그냥 갔으면 됐을걸. 고것이 별것 도 아닌 걸로 일을 키우는 바람에 내가 다음 타깃이 됐다고! 으!!!! 가난하면 입 닥치고 살 것이지. 하긴 너희 같이 육신없는 미물들이 뭘 알겠어. 그 애의 잘난 척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배가 꼬이다 못해 속에서 천불 아니 열불이 터졌을 거야. 그리고 걔 그렇게 당한 것도 아니었어. 진짜 억울했다면 전학이 아니라 교육청에… 윽!”

 

짝 소리와 함께 소녀의 고개가 돌아갔다. 바벨이 때린 것이다.

 

“너희 부모가 너를 한참 잘못 키웠구나.”

“뭐? 씨* 니가 뭔데 우리 부모님을 욕해!!”

“그래도 사람인지라 부모를 욕보이니 분한가 보네.”

“이게…!”

“너야말로 순전히 남 탓만 하고 있다 생각하지 않니. 그게 당한 게 아니라고? 정작 자신이 가해자였을 때는 장난이니 뭐니 하며 괴롭혀 놓고, 본인이 그 자리에 가니 이제는 억울하다니. 네가 생각해도 이런 궤변이 어딨을까 싶지 않니?”

“….”

“너 진짜 가해자는 따로 있다했지. 근데, 네가 한 짓을 봐. 그 애를 고발하고 밝히는 게 아니고 네 절친이 돕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또다시 괴롭히고 악몽까지 꾸게 만드는 게, 네가 말한 복수니? 동물의 왕국? 자연의 섭리? 그렇담 제대로 흐르는 거네. 너희가 자연을 섭리를 들먹이며, 구할 수 있는 동물을 구하지 못한다고 할 때 신도 마찬가지로 인간을 자연의 섭리로 생각해 사람에게 손을 대지 않은 거니까.”

“….”

“너는 뭐가 그렇게 억울하니. 들어보니 억울한 것도 없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바라면서? 너는 그 전학 간 친구에게 조금도 미안함이 없어? 어쩜 그렇게 존중과 배려가 없을까. 네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고 그저 복수를 꿈꾸는 데. 그것도 진짜 가해자가 아닌 너와 같은 처지의 친구를 똑같이 괴롭히는 네가 그 진짜와 뭐가 다르지?”

 

바벨의 말에 소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소녀는 저승으로 가는 걸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얌전히 대장을 따라갔다.

 

“휴, 안심이에요. 순순히 따라가지 않았으면 골치 아파졌을 텐데….

“그때는 엉덩이를 차서라도 보내야지.”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보라.”

“전 한 것도 없는걸요.”

“아냐, 이만하면 훌륭한 보조야.”

“….”

“왜.”

“타나가 그런 말 하니, 하나도 믿기지 않아서요.”

“요게 칭찬을 해줘도.”

“윽! 아파라.”보라는 타나의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맞고 말았다.

“내 주먹을 피하려면 백만 년은 멀었다고~ 꼬맹아.” 타나는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글쎄다. 바리데기님에게 대장이 알아서 잘 보고 하겠지. 왜?”

“아니, 저 애가 잘못은 하긴 했지만 이대로 끝내기엔 찜찜해서요.”

“보라, 산사람 일에 죽은 자가 끼어 들 수는 없어. 바벨의 말처럼 저런 사람을 태어나게 한 신도 자연의 섭리니 뭐니 하며 고통 받는 자들을 내버려 두는 데. 뭐 어쩌겠어. 그리고 너도 알잖아. 산자가 죽은 자의 일에 개입해서 새까만 악령들이 운영하는 *유령사무소를.”

 

* 언더월드 오피스

 

보라도 알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찝찝한 결말이지만 타나의 말처럼 보라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저승사자들은 길 잃은 영혼들을 찾아 안전하게 저승으로 인도하는 일이 주 업무이니 나머지는 신들이나 다른 직책의 존재들이 할 일이었다. 살았을 때 제대로 받지 못한 악행의 대가는 죽어서 처벌받는다.

 

그날 악몽을 괴로워하던 또 다른 가해자이자 방관자는 엉엉 울며, 부모에게 사실을 말했지만, 학교 측은 공부 잘하고 평소 행실이 바른 그를 -돈을 받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내주는 것으로 무마됐다.

 

나를 죽인 건 모두 너희야! 방관하고 있던 나도 나쁘지만, 진짜 가해자에게 빌붙어 다른 사람을 괴롭힌 너희도 공범이야.

 

소녀의 유언은 트위터에 잠깐 올라와 논쟁거리가 됐지만 금방 불씨는 꺼져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지며 찾아본 정보들은 하나같이 맥이 빠졌다. 하지만 이승에서 치루지 못한 죄의 대가는 저승에서 반드시 받기 마련이다. 사람은 잊어버릴지 언정 신은 절대 잊지 않는다. 식탁에는 이미 한참 전에 식어버린 전과 막걸리가 그대로였다. 하아~ 지금 먹으며 맛도 못 느낄 텐데.

젓가락으로 찢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에이, 씨. 이게 뜨듯할 땐 맛있는데, 식으면 진짜 누구 입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축축해서 싫다니까. 으~ 입만 버렸다.

 

 

 

 


참고한 게임과 소설

언더월드 오피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했냐 -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휴머니스트

음식해부도감 : 전 세계 미식 탐험에서 발견한 음식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 줄리아 로스먼. 김선아. 더숲.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 김지현. 비채.

바베트의 만찬 - 이자크 디네센.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추미옥. 문학동네

리틀 포레스트 1.2 - 이가라시 다이스케. 김희정. 세미콜론.

맛있는 인생 : 어느 뉴요커의 음식 예찬 - 루시 나이즐리. 최세희. 한스 미디어.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 : 현대 요리책의 시초가 된 일라이저 액턴의 맛있는 인생 - 애너벨 앱스. 공경희. 서울, 소소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