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코는, 한때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아내와의 첫 만남에서 자기 코가 남들보다 예민하고 후각이 발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의 지원과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그는 음식 평론가의 길을 걷게 된다. 어느 날 미스터 코는 구파발의 한 가게를 방문했다.
아내가 며칠 전에 친구들이랑 방문했다가 음식이 너무 맛있고 인테리어와 셰프, 그리고 주인장까지 모두 잘생겼다며, 호들갑을 떨며 이 친구 저 친구에게 전화를 돌려서 미스터 코의 심기를 조금 불편하게 한 그곳이었다. 아내가 자신에게 같이 가자고 말했지만, 입맛에 안 맞을 수 있으니 미리 방문해서 맛 판별도 해 볼 겸 아내가 호들갑을 떤 그 잘난 인간들의 면상도 겸사겸사 볼 겸 와봤다.
외관은 별다를 게 없는 평범한 곳이었다. 가게에 들어가자, 아담하지만, 예쁜 인테리어가 눈을 사로잡았다. 지배인? 사장으로 보이는 잘생긴 남성이 다가와 안내를 해주고, 메뉴판을 펼쳤다. 메뉴가 매일 셰프에 따라 바뀐다고 해서 미스터 코는 셰프의 특선 요리를 추천받았다. 스튜냄새와 송아지 궁둥이 고기 냄새, 물컹한 자두조림과 수플레 냄새가 난다. 며칠 전엔 양고기를 구웠는지 벽지에 훈연한 양고기과 허브 냄새가 났다. 주방 한쪽에는 양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갈 수 있는 스토브가 보였다. 그런데, 아까 전부터 생선의 까칠한 기름 냄새를 코는 잽싸게 맡고 만다. 전날 아내가 해 준 고등어구이가 몸에서 안 빠진 거로 생각했는데, 집에 돌아와 (가게이름은 말하지 않은 채) 아내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아내는 드라이클리닝까지 깔끔하게 마친 옷이라고 말했다. 미스터 코는 불쾌감과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다. 곧장 서재로 가서 컴퓨터를 켜고 미스터 코는 자신의 블로그에 저렴하고 값싼 욕을 지껄이며, 평론했다. 주소와 지도까지 모두 첨부해서 말이다.
봄 1편, 고등어 생강 간장조림, *발, 네 음식 존나 맛없어.
이딴 게 평론이야?
양치하다 말고 미아는 언니의 가게에 올라온 블로그 리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욕의 시작이었다. *발? 아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 정도로 맛이 없었나?
오랜만에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돼서 기분이 한껏 들떠 있던 미아는 언니에게 지금 전화해도 되나 살짝 걱정되었다.
직장인은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이었지만, 요리사가 직업인 언니는 지금부터가 피크 타임이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일이 힘든지 일반인 요리 교실까지 연 언니는 수강생으로부터 생선을 잔뜩 받아와 매일 생선 파티를 여는 둘이었다. 케이퍼와 얇게 저민 슬라이스 된 양파와 시큼한 홀스래디쉬 소스가 듬뿍 올라간 연어랑 또 언니가 오븐에 구워 만들어준 연어구이와 고등어 솥 밥과 조림, 구이까지… 키야, 점심을 맛나게 먹고도 또 생선을 떠올리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이 흐르는 마법.
“미아 씨, 양치하다 말고 뭐해?” 부장인 마우스였다.
그는 50살이 되었는데도 세련된 옷과 멋들어진 헤어스타일, 그리고 지적이고 일도 척척 해결하는 만능 꾼이었다. 거기다 남편까지(본적은 없지만) 자상해서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28살이지만 얼마 전에 겨우겨우 독립했다. 그러나 전세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언니의 집에 얹혀사는 중이었다…. 언니는 괜찮다고 했지만 집세를 조금이라도 보태지 않으면 불편함이 가시지 않을 거 같다. 거기다 요리도 집안일도 (평생 엄마가 해줬기에) 실수투성이라, 민폐만 끼치는 중이었다.
‘이래서는 결혼은 고사하고 누구 하나 사귈 수 있겠니.’ 엄마의 잔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 듯하다.
“거기 비스트로 아냐? 어머, 미안 보려고 본 건 아닌데.”
“아,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근데 여기 아세요?”
“그럼, 몇 년 전에 꽤 유행하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잖아. 물론, 지금은 좀 한물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유명한 곳이잖아. 참, 나 얼마 전부터 여기 요리 교실 다녀.”
“아~.” 한물갔다는 말에 속이 상했지만 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죽상이야? 무슨 일 있어?”
“사실은….”
미아는 마우스에게 간단하게 이런저런 일을 상담했다.
“흐음, 그거 곤란하겠네. 언니 가게에 그런 악평이 올라왔다니. 거기다 최근 수업 때 들기름 고등어 요리했으니, 가게에 냄새가 뱄을 수도 있겠다, 자기, 너무 속상하겠다.”
“네. 그렇지만 가장 속상한 건 제가 아무것도 도움이 안 된다는 거예요.”
마우스는 풀죽은 미아를 가만히 보면서, 주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은 머리를 둥글게 맞대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언니를 위해, 미아 씨가 직접 요리를 해주기로. 하지만 남자 직원들은 엄마나 여자 친구에게 요리를 얻어먹는 편이라서, 그 의견에 대다수가 찬성하는 쪽이었고 미아는 딱히 요리해 본 적도 잘하지도 않아 곤란하다고 내색하자, 그들은 정성이야, 정성하면서, 대충 넘어가려 했지만, 미아의 다음 말에 다들 정색하거나 얼굴빛이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제, 요리 먹고 언니가 복통을 앓은 적이 있어서….”
“….”
“….”
“아, 그러면 저희 중 한 명이 요리 가르쳐 주는 건 어때요?”
한 직원이 아이디어를 냈고, 다들 좋은 의견이라고 박수치며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시일을 정하려고 하니, 부장은 그날 남편과 식당에 예약돼 있어서 안 된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남편과 아이 하교 때문에 요리는 어려울 거라 했고 또 다른 한 명은 부모님이 집에 계셔서 어려울 거란 답변이 돌아왔다. 그때, 뒤에서 여주가 말을 걸어왔다.
“아까 전부터 말씀드렸는데 좀 비켜주실래요.”
“어, 미안, 미안, 여주씨.”
그리고 그들은 구원자처럼 등장한 (믹스커피를 마시러 온) 여주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여주는 그 시선을 느꼈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도 호락호락 하지 않았고 여주를 못 가게 붙잡았다. 그리고 간단히, 미아 씨의 사정과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다다다 말해주었다. 여주는 생각했다, 그 이야기가 자신과 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여주 씨! 한 사람 살린다고 생각하고, 우리 부탁을 거절하지 말아줘.”
‘아, 불길한데,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거절하자.’
여주는 어쩐지 검은 오라를 풍기는 그들을 바라보며, 눈길을 피한 뒤 입을 뗐다.
“뭔지 모르겠지만, 하기 싫어….”
“여주 대리님, 요리 잘하잖아, 응, 독립한 지 벌써 4년 넘었다 하지 않았어?” C가 말했다.
“맞아, 생각해 보면, 도시락 싸 오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고, 직접 싼 거지?” E가 말했다.
“네, 맞아요.”
“오케이, 좋아, 여주 씨가 딱 맞아!” C가 말했다.
“? 잠깐만요, 뭔지 모르겠지만 전 싫다고 말했어요,”
“여주 씨, 미아 씨 요리 수업 좀 시켜줘.” 마우스가 말했다.
“…제가 왜요?”
“아니, 우리가 방금 설명했잖아”
“설명해도, 그건 좀 무리이지 않아요?” A가 말했다.
“맞아요, 그냥 요리 교실을 다녀요. 요즘 누가 남의 집에서 요리를 가르치고 배워요.” B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씁, 그런 자기들이 가르칠 거야, 가만들 있어.” C가 A와 B에게 조용히 하라며, 일침을 가했다.
“네, 그건 듣기는 들었지만, 굳이 제가 해야 할 건 아니죠. 그리고 저도 동생이랑 같이 살거든요.”
“여주 대리님, 보면 얼굴은 미인인데 은근히 하는 짓 보면 까칠하고 정이 없는 거 같지 않아요.” D가 C에게만 들리게 조용히 말했다.
”방금 얘기를 듣고도 하기 싫어요?”
“ 네, 싫어요. 그리고 제가 할 일은 아니죠, 여러분들도 남편이니 뭐니 하면서 못 맡고 계시잖아요. 그리고 너, 요리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너가 직접 가르치면 되겠네, 안 그래?”
“아하하… 들으셨어요. 죄송해요.” D가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말했다.
“D 씨 말이 틀린 건 없지. 솔직히 가정 있는 우리 사정이랑 여주 씨 사정은 다르잖아.” C가 계속 말했다.
이 사람들이! 아니, 대체 뭐가? 딱히 생각해 보면, 사정이 다르단 건 대체 무슨 뜻이며, 가정이 있건 말건 그게 뭐 어쩌라고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사정이 그리 다르지 않다면 그건 당신들도 마찬가지 아냐!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걸 참는 여주였다.
“야박하긴. 여주 씨 은근히 보면 남들하고 철벽치고 잘 안 어울린다니까. 회사 생활은 단체생활인 거 몰라서 그래요?”
“단체생활이요? 요리를 가르치는 게 어떻게 단체생활이죠? 여기가 회사지 요리학원입니까? 제가 굳이 힘들게 그래야 할 이유도 없죠. 안 그래요. 미아 씨….”
“아, 네! 그렇죠.”
“승낙하면 당분간 야근 절대 안 시킬게.”마우스는 비장의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여주가 꼼짝을 안 하자 마우스는 눈짓으로 미아를 쳐다봤다.
“아, 제가, 커피도 일주일간 사드릴게요.”
“….”
“……원하는 게 따로 있나 본데? 말해 봐요. 여주 씨, 어떻게 하면, 승낙 해주실 건지.”
여주는 곰곰이 생각했다. 저들은 어떻게든 나를 붙잡고 이 일을 승낙하게 할 거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바보같이 끝내는 건 안 된다. 이래도 저래도 빠져나갈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여주는 씩 웃으며 마우스에게 말했다. 앞으로 일주일만 1시간 일찍 퇴근시켜달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뱉었다.
다음날 여주는 미아 씨를 위해, 요리 특강을 하기로 했다. 좀 전에 마트에서 장을 한가득 보고 오는 중이었다. 사실 미아 씨를 가르치는 게 한 달이면 끔 직할 뻔도 했지만, 다행히 하루였고, 이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운 좋게 딸려 오는 좋은 행운들에, 여주는 만족스러웠다. 갑작스럽게 시작한 요리 교실은 미아가 가지고 온 고등어로 시작하기로 했다.
미아는 옆에서 수첩을 들고 비장한 얼굴로 여주의 설명을 꼼꼼하게 적고 있다. 눈으로 어느 정도 순서나 요리를 보다 보면, 익숙해질 거다. 정말 솜씨가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고등어 생강 간장조림, 생물 고등어는 생선가게에서 사 왔어도 흐르는 물에 씻어서, 마른행주나 키친타월을 깔아 한쪽에 가지런히 둔다. (요리 초보라면 통조림을 이용하는 게 좋다. 뼈도 잘 발라져 있고, 설령 있어도 쉽게 부서져 목에 걸릴 일도 없고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다)
“어? 근데, 웍이 아니라, 솥에 하시나요?”
“네, 전 솥이 편하거든요. 그리고 이 솥, 할머니가 물려주신 거라 그런지 음식이 엄청, 엄청 맛있게 돼요. 미아 씨는 웍을 사용 하세요.”
솥에 설탕과 편을 썬 생강을 넣고 간장과 물, 맛술을 같은 비율로 넣은 뒤 불을 켜고 조려준다. 이때, 식용유를 한술 넣어 주면, 윤기를 낼 수 있을뿐더러 코팅 효과도 있다. 끓으면 고등어를 넣고, 양념을 끼얹어주며 잘 익힌다. 국물이 어느 정도 조려지면, 이때 이쑤시개로 구멍 내거나 반으로 자른 꽈리고추를 7~8개 넣어주고 국물이 자작할 정도로 조리면 끝.
요리 초보자일수록 여러 개의 음식보다는 한 가지 음식만 집중해서 밥상 위에 올리는 게 좋다. 그래야 점점 요리에 자신감이 붙고 성취감으로 계속 요리를 하고 싶어진다. 칼칼하게 먹는 사람들은 여기에 고춧가루나, 청양고추를 넣어서 맵단으로 먹으면, 밥 한 공기 뚝딱이다. 다만, 식탁에 한 가지 요리만 올라오면, 밥을 많이 먹게 되니 반찬 두세 가지를 더 올려라. (이러면 탄수화물을 적게 먹을 수 있다.)
또 생물을 이용할 경우, 간장보다는 찌개나 조림으로 요리하는 게 훨씬 맛있고 좋다. 지금 레시피는 꽁치나, 다른 생선 통조림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간편 요리다.
여주가 한 요리와 미아가 한 요리가 한 상에 같이 올라와 있었다.
여주가 먼저 미아가 한 요리를 한 입 맛보니,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강 향과 적당히 짭조름한 양념이 묻은 고등어는 기가 막혔다.
거기다 미아 씨의 요리는 정말 사랑이 가득했기 때문에 미아 자신도 요리를 먹고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어머, 이걸 내가 진짜로 했다니….”
“아주 맛있게 잘됐네요. 자, 배고프니, 이제 속도 좀 내서 먹어보죠.”
“네! 잘 먹겠습니다.”
고등어 생강 조림을 흰 쌀밥 위에 두툼한 살 하나를 집어서 얹어 먹으면 부드럽지만 촉촉하게 스며든 양념과 살이 으깨지면서 단짠의 양념 맛에 밥과 맥주를 부르는 안주 겸 반찬이 손쉽게 완성된다. 거기다 양념이 묻은 밥은 평소보다 배는 더 맛있어진다.
음, 맛있어. 얼마 만에 맛보는 생선이야. 미아 씨가, 고등어를 넉넉히 가져와서 정말 다행이야~.
아삭!
“어머, 이거 진짜 맛있어요. 여주씨.”
“아, 무생채, 그거 맛있죠~. 지금이 딱 만들기 좋은 때죠. 캠핑 갈 때도 뚝딱 만들기도 쉽고.”
“그럼, 저 이것도 알려주세요!”
‘…….’
어라? 내가, 내 무덤을 판 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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