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작 소설] 마녀의 솥

[요리] 마녀의 솥 봄 5. 두근두근 짝사랑엔 역시 달콤한 마카롱이지

 

 

 

 

방송부인 시나는 모니터 화면에 비치는 자기 모습이 아직 어색하다. 지난 1년간 이를 악물고 연습한 결과 이번에 드디어 마이크를 잡게 되었다. 비록 앵커석이 아니고 기자였지만 그래도 그간 학생회장 선거를 통해, 시나는 취재와 자료조사를 꼼꼼히 잘 해냈다. 앵커석에 앉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지금은 이걸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평소 감정표현도 무뚝뚝한 시나였지만, 방송 때만큼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9대 학생회장으로 2학년 이세림 학생과 부회장으로 2학년 노아라 학생이 뽑혔습니다. 지난 학생회장 선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시나의 모습이 사라지고 투표함과 학생들, 그리고 시나의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또다시 화면이 바뀌고 시나는 재빨리 다음 원고를 읽어 내렸다. 몇 번을 연습했는데도 영상에 맞춰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당엔 후보로 나온 학생회장 후보 세 명과 부학생회장 세 명이 투명한 가림막이 쳐진 책상에 앉아 열띤 토론을 하는 장면이었다. 뒤로 스크린 보드에 파란색 학교 로고와 함께 9대 학생회장 토론회라고 흰 글씨가 바탕체로 크게 쓰여 있었다.

 

“사전 신청을 통해서 방청단과 유튜브로 생중계된 이번 토론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로 강당에는 널찍하게 띄엄띄엄 앉은 아이들과 핸드폰으로 영상을 시청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비춘다. 여섯 후보의 선거공약과 직접 학생들을 인터뷰한 영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생회장과 부회장의 인터뷰를 끝으로 1부 아침 방송은 끝났다. 또다시 앵커석으로 화면이 비치고 시나는 겨우 한숨을 돌렸다.

 

 

 

 

봄 5편, 두근두근 짝사랑엔 역시 달콤한 마카롱이지

 

 

 

 

“시나,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또야? 시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마카롱 하나를 집었다.

 

“잘해봐.”

“? 그게 끝이야?”

“그럼, 뭐 더 말할까? 됐고. 야, 마카롱이나 먹어. 음~ 이 녹차, 진짜 진하다. 쌉사름하고 맛있어.”

“으앙~ 그러지 말고 도와줘 시나.”

“나, 곧 학원갈 시간이야.”

 

 

한적한 카페에서 산딸기 마카롱을 집어 먹으며, 시나는 친구인 세림의 이야기를 들었다. 금사빠인 친구 이세림은 늘 누군가에게 쉽게 반하고 사랑에 빠졌다.

세림은 운동과 공부, 잘생긴 외모로 여학교에서 흔하지 않은 팬클럽까지 있는 아이돌이었다. 게다가 그는 돈까지 많은 금수저 집안에 엄친딸이였다. 그러니 이세림이 맘만 먹으면 꼬시지 못할 애는 없건만. 연애를 하면, 늘 꽝을 뽑는다는 게 문제였다.

 

10대의 사랑이 마냥 꺅꺅거리며 좋을 거로 생각하지만, 우리의 사랑도 어른들 못지않게 치열하고 낭만적이지 않다. 시나는 앞에 놓인 얼그레이 마카롱 하나를 집어 먹으며, 이번에는 누군데? 라고, 물었다.

사실, 세림의 연애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다. 오직 쫀뜩한 꼬끄와 부드러운 얼그레이 크림에 혀를 집중 할 뿐이었다. 하지만, 세림이 내뱉은 낯간지러운 말에 입안에 있던 이 맛있는 마카롱이 덜 달아 뱉어낼 뻔했다.

 

“그게, 말 못 하겠어. 진짜 나 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죽을지도 몰라.”

 

얼씨구? 네가, 언제부터. 갑자기 뚝 떨어진 단 맛에 시나는 손가락에 묻은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심드렁하고 달관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누군데…?”

“이거, 진짜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 누구한테 말하면, 너 지옥간다.”

“그래, 지옥가지 싫으니, 꼭 비밀 지킬게…. 대체, 누군데 아까 전부터 뜸 들여.”

“너희 언니.”

“….”

“….”

“절대 안 돼! 너 같은 금사빠한테, 우리 언니는 절대 줄 수 없어!”

“트, 틀린말은 아니지만, 어, 어쨌든 이번엔 진짜야.”

 

진짜라고 하지만 이번에는 저게 얼마나 갈까. 시나는 씨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눈으로 레이저를 쏠 듯 세림을 노려보았다.

 

“너 근데, 어디서 우리 언니를 봤는데?”

“저번에 학원 끝나고 엄마랑 시장 보다가 너랑 네 언니가 장 볼 때 봤어.”

“아, 왜 하필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우리언니냐고. 이건 사랑에 빠지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야. 그 철옹성은 아무도 못 뚫는 다고, 이 멍청아!”

“그. 그 정도야……?”

 

시나가 이러는 데는 오랜 고질병처럼 사랑을 믿지 않는 그 단단함 마음을 세림의 가벼움으로는 절대 뚫지 못한다는 데에 있었다.

한 번은 언니한테도 사랑이 뭘까?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세상 냉랭하고 힐난하는 눈초리로 언니가 말했다.

 

“사랑 따윈 다 부질없다 시나야, 여자에겐 공부와 돈이 최고야. 거기에 술이나 안주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여자는 사람으로 살 것이냐, 아니냐, 로 나뉜다. 너.”

 

사람이면, 사람이지, 아닌건 또 뭐란 말인가. 어쨌든 언니는 내 말에 일종의 자격과 타인의 인정이라고 말했다. 그것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여자든 남자든 사람이 아니라고. 그건 애완용 개새끼라고 말 했었다. 어리둥절한 내 표정에 언니는 나에게 아직은 몰라도 된다고 했지만, 시나는 그 알듯말듯 한 언니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았다. * 성원권(成員權) 안에 포함되느냐 아니냐, 였던 것이다.

* 구성원 자격. 회원자격.

 

“야, 내말 듣고 있어?”

“어, 응? 미안, 잠깐 딴 생각하느라….”

“야아~ 친구가 일생일대에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구만….”

“일생일대는 무슨…, 그저 방탕한 네 마음과 가치관이겠지.”

“으악~ 님아, 팩폭 그만!”

 

세림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총맞은 시늉을 했다.

 

“야, 우리 언니가 그러는데, 연애에 자주 빠져사는 것도 일종의 병이라던데.”

“병? 뭐, 사랑이 불치병이라고는 하긴 하지.”

 

‘아,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닌데. 이래서 아방한 인간은 못 이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언니는 애초에 연애나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유는 친구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일은 자신이 오기 전에 있던 일이고 그저,) 친구의 연애문제를 상담하면서 남자에게 질려버렸다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알 뿐이었다.

 

자신이 알기론 언니는 이때까지 남자를 사귄 적이 한 번 도 없었다. 언니는 잘생기고 화려한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랑 거리를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한 번씩은 뒤 돌아 볼 정도로, 연예인 제의나 남자들에게 고백을 많이 받았다고 새 아빠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현장을 시나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남자가 고백하는 건 늘 드라마에서 본 일이라, 시나의 심장이 세차게 콩닥 댔었다.

 

그 날 일이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고백했다 차인 그 남자애는 그만 상사병에 빠졌고 나중에는 그 남자애 엄마까지 찾아와 자신의 아들이 상사병에 걸렸으니, 그저 한 번 만나달라고 언니에게 직접 부탁까지 하고 간 적도 있었다. 물론 언니는 단칼에 거절했지만. 그러자 어쩜 그렇게 야박하냐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때 언니가 젠체하고 야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뉴스에서 스토킹이니 연인을 살해하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언니가 잘 거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녀 어쩌고저쩌고 하는 그런 괴짜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언니가 예전에는 바보 같았지만 지금 와서는 차라리 괴상한 이야기에 푹 빠져 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는 것 같다.

 

“너희 언니는 좋아하는 이상형이 누구야?”

“몰라, 우리 언니, 평생 연애 안한다는데….”

“왜?”

 

세림이 몸을 앞으로 쭉 내밀며, 말했다. 나는 모른 척 하며, 이유야 나도 모르지. 어깨를 으쓱이며 세림이 안 먹는다고 밀어둔 녹차 마카롱을 입에 쏙 넣었다.

 

생각해보니 진짜로 언니는 좀처럼 연애를 하지 않았다. 이상형도 없는 것 같았다. 또, 남자 따위는 없어도 잘 살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남자가 고백하면 나랑 대화하며 지었던 미소는 사라지고 납처럼 차갑고 딱딱한 얼굴이 됐다, 언니는 있지도 않은 남자 친구를 말하며 남자들을 밀어냈다. 여지를 1도 주지 않는 완벽한 멘트였다.

나는 언니의 태연한 거짓말을 들으며 자라왔다. 언니가 왜 있지도 않은 남자를 들먹이는지, 연애는 해봤는지, 드라마나 소설에서 나오는 진정한 사랑을 해봤거나, 가슴 시린 시련과 이별을 겪어봤는지, 궁금하지도 알고 싶었던 않은 건 아니었지만 굳이 가족이라도 말하지 않은 것들을 파헤치는 게 싫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우리 둘이 자매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 것처럼.

 

“언니분 집에 계시겠지. 오늘 너희집 놀러가도 돼.”

“어, 언니분? 컥컥. 야, 니가 그렇게 말하니, 점점 이 디저트가 맛없어 진다. 그 닭살 돋는 멘트 그만 해.”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바보가 된다잖아.”

 

꽈배기야, 몸을 배배 꼬게. 팔을 이리저리하는 이세림의 모습을 보며, 이 사람도 좋고, 저 사람도 좋다는 저 마인드, 맘에 안 들어. 갑자기 시누이가 된 듯 변해버린 마음이었다.

 

“너, 보면 생긴 거랑 다르게 은근히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는 거 알지. 하나만 확실히 해. 여기저기 줏대 없이 질척대지 말고.”

“…응.”

 

사랑에 유통기한이 얼마일까, 반년? 1년? 4년도 안 될지도 모르고 영원할지도 모르겠지만, 엄마가 새 아빠와 재혼하고 아직도 그 행복한 기억속에 사는 걸 보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있다는 그 영원불멸은 왜 누구에게는 있고 없는지 모르겠다. 물론, 세림의 유통기한은 분명 폐기불능일거다. 저 망할 인간.

엄마가 새 아빠와 살던 집을 세 놓고 간 건 엄마는 새 아빠와의 추억이 담긴 그 집에서 도저히 살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서울을 떠난 것이다. 이토록 같은 장소도 다른 느낌을 받는다니.

 

어쨌든 새 아빠와 재혼하기 전 엄마와 아빠도 동네에서 잉꼬부부로 소문이 난 부부였다. 그런데, 아빠가 죽고 엄마는 2년도 안 돼 재혼했고, 새 아빠와 행복하게 가정을 이루고 잘살고 있었다. 덩달아 언니가 생겼지만, 당시로썬 마냥 기쁘지 않았다. 그때 시나는 중학생이었고 한참 사춘기였다. 언니나 오빠가 있는 다른 애들은 부러워한 적은 있지만 바란 적도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가족이라고 하니, 사춘기+반발심으로 그들을 미워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막말하거나 괴롭혔던 건 아니고 그들도 쉽게 당할 성격도 아니었다. 자신도 기껏 해봐야 못 들은 척하거나 공부한다고 방에 들어가서 안 들어오는 정도랄까. 그때만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라 다행이라고 여겼던 적도 없었다. 지금은 물론 언니에게 반발심이나 적대적인 감정은 없다. 용돈을 잘 주는 엄마. 엄마가 갑자기 시골생활을 하는 바람에 나를 자신의 보금자리를 내어준 언니에게는 무한히 감사를 느낄 뿐 이다. 물론 그게 얼굴에 티가 안 날 뿐이지만. 레몬 마카롱을 먹으며, 어쩜 사랑은 지금 자신이 맛본 마카롱 맛과 다르지 않을 까 싶었다. 마지막에 상큼한 사랑을 생각하며, 시나는 어떻게 반했냐고 말해보라고 했다.

 

“어? 도와 줄 거야?”

“글쎄, 너 하는 거 봐서.”

 

사실 도와줄 마음도 없지만 어쩐지 심술이 스물, 스물 올라온다. 뾰족한 꼬리와 뿔이 실체 한다면, 지금쯤 내 머리와 엉덩이에 생기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