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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겨울 16편, 육개장과 소주 “남의 집으로 넘어온 담배 연기 처벌해야죠.”“그 연기를 어떻게 막습니까. 아예 이참에 자동차 배연가스도 죄로 다스리지 그래요.” 수키는 바리데기를 만나러 왔다 한참 담배 연기와 배연가스로 투덕대는 저들의 모습에 눈을 가자미처럼 좁혀 바라봤다. 온화하게 웃고 있지만 바리데기의 눈은 대리석 바닥처럼 차갑고 냉골이 시리기만 하다.그들의 회의는 1시간이 넘어갈 때까지 좁혀지지 않았고 해결되지 않은 채, 2차전을 준비하려고 서둘러 도망치듯 회의장을 나왔다. “저 망할 공무원 새끼들. 대체, 이번엔 뭔 죄목으로 부서를 늘리려는 거야. 뭐? 금연 구역으로 지정된 아파트 연기는 뭐가 어쩌고저째? 미친놈들 아냐?”“수키. 여긴 어쩐 일로 찾아왔어요? 당신은 죽은 이들을 인도할 때 빼고는 저승에 발길조차 닿는 걸 싫어하..
[요리]가을 14편, 여행 그리고 이국의 맛과 멋. 최고의 크루아상 어느 뉴요커의 음식 예찬 맛있는 인생 이야기 - 크루아상이여, 다시 한 번! 참조해서 섰습니다.    Rrrr‧… Rrrr‧…달칵. “네, 여보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반장님. 어쩐 일로 전화를 다……네?! 남편이요? 어머, 세상에. 그래서 지금 병원 장례식장이요. 흑. 흐…윽! 네. 네. 금방 갈게요.네. 네. xx병원 지하로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외투를 챙기며,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조금 전 눈에 그렁그렁했던 눈물을 누구보다 냉정하게 닦아내며 히죽 웃으며 그는 생각했다. ‘드디어, 그 질긴 것이 죽었다. 그 끔찍한 것이 드디어 길고 긴 시간을 살다 죽었다. 아, 나는 이제 해방이다. 나는 이제 해방이다.’비실비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킥킥 거리고 웃으며 그의 멍든 ..
[요리]가을 13편, 평소 먹었던 치킨이 맛없다면 그건 필시 유령 탓이다. 보라는 저승사자 일을 20년이나 해온 베테랑이었지만 보라 밑으로 새로운 인력이 들어올 일이 없으니, 평생 신입 꼬리표를 뗄 수 없었고 새로운 놀라움은 그간 저승사자 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보라에게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 신기하고 재미난 일이 지금 눈앞에 생겼다. “안녕, 저승사자들아~. 난 마녀 키르케야.” 마녀. 세상에. 마녀라니.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근데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저승사자도 있는데, 마녀가 없으리란 법이 어딨어? 주황색 머리를 나풀거리며 우아하지만 매혹적인 키르케라고 자신을 소개한 마녀가 우리들 앞에 서 있었다. “의뢰를 하나 하고 싶은데… 수키.”“헛소리 하지 마. 키르케.”“물론 보수는 톡톡히 해줄게. 개다래 나무는 어때~♡”“닥쳐. ..
[NL] 베일에 싸인 환자 2 6. 익명의 편지 1수기로 작성. 필체를 감정하면, 누군지 단번에 알아볼 것 같아, 왼손으로 기울여 쓴 흔적이 역력하며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 필사적이다. 우리는 그녀를, 수수께끼 환자 또는 303 환자라 불렀다. 간호사나 의사들 모두 303호 환자에 대해 쉬쉬 말을 아꼈고 그녀에 대해 질문하면 벽에 가로막힌 듯 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지만, 그것들은 실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실제 우리가 아는 건 몇 가지 없었다. 병원장이 직접 그녀를 진료하며. 진단서, 병력기록 없이 입원했고 그녀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고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늘 베일에 싸여 있었다. 앞서 말한 그녀의 정보도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그것이 사실인지조차 우리는 알지도 못했다.303호 ..
[요리] 가을 12편, 지글지글 기름에 굽는 전은 언제나 진리다. 2부마녀의 솥    전류는 신비로운 세계다. 기계는 전류를 추진 장치로 움직인다. 전류는 아주 가끔 사람들을 다른 차원으로 인도한다. 휴대용 핸드폰이 생긴 뒤로 전파를 타고 가는 게 용이해지기는 했지만, 우리는 늘 지하철을 이용한다. 왜냐하면 핸드폰은 비정상적인 전파 루트라 엉뚱한 곳으로 떨어질 수 있지만 지하철은 늘 정확하게 원하는 곳에 당도하기 때문이다.    가을 12편, 지글지글 기름에 굽는 전은 언제나 진리다.    단호박전은 미리 채만 써는 수고로움만 던다면 금방 뚝딱 만들 수 있다. 보라는 한쪽 어깨에 휴대폰을 걸치고 동생과 수다 중이었다. 미국에서 열심히 변호사와 건축가로 일하고 있는 두 동생은 보라의 자랑이었다. 유학까지 다 보내고 버젓이 제 할 일들을 하는 녀석들이 뿌듯하다. “지금 뭐..
[요리] 여름 11편, 바질페스토 저리 비켜! 깻잎페스토가 잔뜩 들어간 크림 떡볶이가 진리다. 여름 11편, 바질페스토 저리 비켜! 깻잎페스토가 잔뜩 들어간 크림 떡볶이가 진리다.    그 애의 목소리는 나른하고 게을러서 듣고 있다 보면, 춘곤증처럼 잠이 밀려온다. 애영은 여주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여름이 오면, 가지가 예쁜 보라색으로 변한다. 이때 가지를 따서 반을 가르고 먹기 좋은 크기로 큼지막하게 썬 가지를 찜기에 넣고 쪄준다.잘 익은 가지는 한 김 식히고 참치액, 후추, 들기름으로 조물조물 무친다. 그리고 부드러운 가지를 쌀 밥 위에 얹어 먹으며 흐물거려 물 없이도 꿀떡꿀떡 넘어간다. 찜기에 다른 양배추나, 호박잎을 쪄서 쌈장이랑 같이 곁들어 먹어도 맛있다. 양파, 고추, 다진 마늘, 거기다 기름기 쪽 뺀 참지를 넣으면 고기식감이 나기도 한다. 아니면, *가지 밥을 해먹어도 좋다. 솥에..
[요리] 여름 10편, 해도 해도 늘지 않는 것이 인간관계와 손맛이다, 요리가 두렵다면, 조미료를 넣어라 헉헉. 헉헉. 입에 거품이 일었지만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방심했다. 3년이나 안 나타나길래 안심했는데. 방심하고 말았다.X는 열심히 달렸다. 저 미치광이 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하루를 꼬박 산에서 숨고 달리고 헤맸다. 눈물이 났다.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는 고프고 눈물 나고 모든 것이 치욕스럽고 힘들었다. 절벽 끝에 서서 하얗게 거품이 이는 파도를 보며 X는 생각했다. 저 빌어먹을 새끼, 저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 X의 마음속에 꾸물꾸물하고 더러운 것들이 자꾸 샘솟는다.저 멀리서 놈이 뛰어오는 게 보인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나에게 다시 족쇄를 채울 놈의 모습이. 히히. X는 그의 후손들에게 빌어먹을 저주를 퍼붓기로 했다. 그게 X가 할 수 있는 최대 발악이자 복수였다. ‘아아, ..
[NL] 베일에 싸인 환자 땅이 모르는 비밀은 일어나지 않거나 앞으로도 영영 일어날 리 없는 것들 뿐이다.  0. 1915년 어느날지금은 폐간된 신문사 1915년유라시아 재단에 대해 은밀하게 퍼지는 소문의 실체, 재단의 내부 분열인가?파헤쳐진 묘, 무덤 도굴꾼의 소행인가? 불안에 떠는 시민들, 범인이 노리는 것은?무덤 도굴꾼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사람들 사이에서 유라시아 재단보다 더 논쟁거리는 의미 없이 파헤쳐진 묘이다.보통 도굴꾼들은 수십 분 내에 도굴을 끝낸 후 무덤을 원상복귀한 후 시신을 운반하는 것에 대해 자랑으로 여기는데 이 도굴꾼은 물건이나 시신에 손 댄 흔적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제스프리 골드가 시신을 직접 확인해 본 결과 시신은 아주 보관이 잘 된 깨끗한 상태였다고 한다. 간혹 후두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