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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단편 모음집

[GL] 종족 1

초능력 + 범죄 소설 쓰기.

 

 

 

 

종족

 

 

 

 

2010년 3월 5일 밤 10시 30분 112 신고센터. 1번째 사건.

 

네, 112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안녕하세요, 여기는 해뜬날 아파트인데 옆집에서 비명과 몸싸움하는 소리를 들어서요. 거기는, 여자 혼자 사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아요. 한 번 와주실 수 있을까요?

 

2010년 3월 7일 밤 11시 20분. 차 안. 2번째 사건.

 

리버 빌딩에 침입자가 있는 것 같다.

여기는 알파. 알파. 알겠다, 현장으로 즉시 출동하겠다.

 

경찰차 한 대가 무전을 받고 곧바로 비좁은 골목을 빠져나간다.

 

2010년 3월 9일 새벽 1시 벨마 빌라. 3번째 사건.

 

쾅. 쾅. 쾅!

벨마 빌라 201호에 온 경찰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문을 세 번 두드리는 중이었다. 벌써 몇 번이나 문을 두드린 건지 모르겠다. 벨은 고장 났는지 울리지 않았고 아까부터 앞집이 고개를 빼꼼하며 무슨 일인가 내다보고 있었다. 부인과 8살 정도 돼 보이는 꼬마는 코 위의 주근깨가 나 있는데 벌써 장난꾸러기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들어가라고 해도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더 세게 쳐봐야 하나 생각하던 경찰은 꼬마의 말에 손이 허공에 멈칫한다.

 

뭐라고?

선샤인 할머니는 귀가 잘 안 들리세요. 특히나 보청기를 안 끼시면 아무 소리도 못 듣죠. 그래서 아무리 목소리를 크게 해도 지금은 주무시고 계셔서 못 들으실 거예요.

 

2010년 3월 12일 새벽 3시 장미 빌라. 4번째 사건.

 

경비원에게 눈짓하자 그는 예비 열쇠로 문을 열어주었다. 화장실의 물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심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경찰관의 눈빛은 심상치 않은 이 기류에 바짝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들어가기 전, 먼저 큰 소리로 경찰임을 밝혔다. 여전히 낮은 침묵.

 

경찰입니다, 안에 아무도 안 계세요? 신고가 들어와서 그러는데, 확인 좀 하려고 왔으니, 안에 사람 있으면 대답해 주세요.

 

그들은 물소리가 나는 화장실 앞에서 쾅. 쾅. 쾅. 세 번을 문을 치며 안에 사람이 있나 없나 확인했지만 되돌아오는 소리는 없었다. 다시 한번 경찰관입니다! 하고 문을 슬며시 여는데, 뿌연 수증기만 가득하다. 그때 또 다른 경찰관이 다른 방을 살펴보는데 살짝 열린 문틈으로 비치는 한 인영에 경찰은 주머니에 있는 총에 살며시 손을 얹고 문을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그는 눈을 부릅뜨고 스타킹에 목이 졸린 여자를 보게 된다.

 

 

 

  

1, 카인과 아벨, 2010년

 

 

 

 

세이브와 로드, 그게 내가 가진 초능력이죠. 지젤은 타이레놀 국장의 방에서 가져온, 오래된 잡지를 덮고 다른 파일을 집어 들었다.

 

한스, 타이레놀 국장이 한 말이 사실일까?

글쎄? 물론 나쁘지 않은 제안이기는 하지만 꼭 사실대로 들을 필요는 없지 않아?

그럼, 타이레놀 국장이 거짓말한다는 거야?

 

한스는 운전 중이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옆 조수석에는 누나, 지젤이 앉아서 파일을 흩어보고 있다. 쌍둥이인 둘은 졸업을 앞두고 이번에 지원을 넣은 신문사로부터 그것도 무려, 보도국장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좀 전에 그들은 파격적인 제안을 받게 된다.

 

지젤이 생각했을 때 타이레놀 국장은, 심한 결벽증 환자이자 엄청난 일 중독자이며 손기술은 마술사에 가까웠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서류를 펼쳐 들었고 그래서 한스와 지젤은 국장실에 들어온 10분간 빽빽한 정수리만 보고 대화를 나눴다. 나중에는 저 정수리가 본체가 아닐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까지 했다.

 

타이레놀 국장의 뒤에는 큰 보드 파일이 있었다. 거기엔 피해자들의 사진과 나비 스타킹에 관한 오려진 다른 신문 기사(2주간 여성 4명이 목이 졸려 죽었다는 기사, 지젤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사건 중 하나이다.) 그리고 지도에 빨간색 펜으로 동그라미 쳐져 있었는데 두 번이나 선을 그은 흔적은 보이지 않는 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둘 다, 졸업하면 우리 신문사 범죄부서에서 일하고 싶다고?

네, 진심으로.

네!

차석과 수석이라. 남매가, 훌륭하군 그래.

 

타이레놀 국장이 보고 있던 서류는 자신들에 관한 것이었다. 뒤로 묶인 국장의 깐깐한 고무줄처럼 말할 수 없는 기류가 그들 사이에 흐르는 것 같았다.

 

입사하기 전에 자네들의 실력을 한 번 시범해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겠나?

좋습니다. 얼마든지, 저희도 저희 실력이 궁금하거든요. 한스가 지젤을 향해 상냥한 미소를 지은 뒤, 국장에게 말했다. 지젤은 어깨를 으슥하며, 승낙의 제스처를 했다.

 

실력이 궁금해? 자네들, 지금 내 말이 농담처럼 들리나?

아뇨, 농담…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한스는 곧바로 사과했다.

행동이 둘 다 형편없지만, 지금으로써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처지니 어쩔 수 없군.

저, 말씀 중에,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급하게 서류를…. 

 

국장은 한 손으로 손짓하며 들어오라고 했다. 그 뒤로도 몇몇 사람들이 그들의 대화를 방해했다. 그리고 지젤은 한 가지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국장의 방은 한두 사람이 오가는 곳이 아니었는데, 자잘한 결제부터 시작해서 큼직큼직한 사건의 파일들까지 자신들이 있을 때만 해도 몇 번이나 직원들이 왔다 갔다 했는데도, 그의 책상 위에는 먼지 한 톨 묻어나지 않고 반질반질했다. 오죽했으면, 한스가 들어오면서 만졌던 삐뚤어진 서류 하나도 국장이 손으로 쓱, 하자 감쪽같이 반듯한 모습을 했다. 보드 파일에 잘 정돈된 크로스체크(cross check)된 기사들, 먼지 한 톨 없는 청결한 방, 국장은 지독한 결벽증 환자였다.

그때, 탁 소리를 내며 서류를 덮자, 한스와 지젤은 뒤늦게 그들이 국장실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리고 그의 안경 너머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에 침을 꼴딱 삼켰다.

 

이런 약아빠진 여우 같은 녀석들…. 그래, 보상이 없다면 이런 제안을 받지 않겠다는 거지. 좋군, 난 언제나 야망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만일, 자네들이 이 일을 해낸다면, 곧바로 팀장으로 임명하지.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이 일에 성공했을 때 일이고, 둘 중 한 명만 특진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게.

파격적이네요? 그리 쉽게 팀장을 달아도 되는 건가요? 한스가 말했다.

불만이면, 해결하고, 시시한 업무 쪽으로 보내주지. 예를 들어, 연예부 기자 어떤가?

…아뇨, 불만 없습니다.

좋아. 둘 다 승낙하는 걸로 알겠네. 참, 그를 세상 밖으로 불러내는 일은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만만히 보지 말게. 자료는 가져가도 좋아. 궁금한 점 있나? 

 

타이레놀 국장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스와 지젤은, 서로를 쳐다보고는 다시 타이레놀 국장을 보았다.

 

그는 지금 어딨죠? 지젤이 물었다.

좋은 질문이야, 그는 현재 12년째 은둔생활 중이지. 현직에 있을 때 그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많이 들었어. 그의 행동 분석학은 세계 최고야. 그래,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둘 중 누가 그를 데려올 거지?

….

….

 

지젤과 한스는 국장이 넘겨준 서류를 펼쳐보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녹음기와 서류들이 놓여있었다. 대충 파악한 신원과 자료들을 가지고 지젤은 국장실을 막 빠져나가려다 돌아보았다. 빽빽한 정수리를 보며 지젤은 물었다.

 

그런데 가명이…. 카인? 왜 카인이에요?

글쎄? 그건 그에게 직접 듣도록.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피해자들 주변 인물들에 대해 인터뷰도 하고 돌아오면 더더욱 좋겠군. 자네들의 유능함에 내가 기대가 많아.

 

빈정거리기는. 제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참, 카인이 세이브, 로드를 사용하지 않게 조심해. 그건 아주 위험한 거거든.

 

설마, 지젤은 좀 전에 읽어본 그 글을 무시하며 국장실을 나왔다.

그들이 1시간을 내리 달려 도착한 곳은 재개발이 전혀 안 된 시간이 90년대에 멈춘 곳이었다. 지축은 아직 서울에서 밭과 논이 있는 곳이었고 골목에 아이들이 뛰놀며 문을 활짝 열어 마을에서 공동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었다. 그들은 낯선 사람이 다가와도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 미로 같은 골목을 돌아다니자, 그들은 촌스러운 빨간색 양철지붕과 서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넓은 마당 있는 집이 오늘 자신들이 찾는 곳임을 알았다. 벨을 누르자, 빽빽하지만 정겨운 벨 소리가 들렸다. 두 번의 벨 소리, 그리고 안에서 들려오는 기계음이 섞인 오토매틱 목소리.

 

누구세요?

타블로이드 신문사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이 카인인가요?

네. 맞는데 누구시죠?

저는 지젤, 바쁘신 게 아니면 잠시 안에 들어가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꺼져, 날 내버려둬!

 

 

 

 

세이브 1. 방목해서 키우는 닭과 소, 돼지가 있는 축사인 넓은 마당을 가로지르며 그들은 실내로 들어섰다. 문전박대를 예상했는데, 눈 깜짝할 새에 거실에 앉아 있다. 그들 앞에는 직접 담근 시원한 매실청이 놓여있었다. 잔뜩 뜬 머리를 매만지며, 늘어진 셔츠와 하품을 하는 카인을 보며, 한스와 지젤은 자신들이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주소지와 사람들이 말하는 곳은 여기였다.

긴장감이라고는 도통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서 지젤은 생각했다. 대체 타이레놀 국장이 얼마나 자신들을 무시하고 미성숙한 존재로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이것조차 시험의 일종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한스와 지젤의 신분증을 돌려준 카인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어서 와요.

카인,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해요, 다시 소개하자면 저는 지젤, 여기는 한스예요.

안녕하세요, 한스라고 합니다. 아오, 손에 힘이 좋네요.

칭찬 고마워. 좀 전까지 덤벨 운동 중이었거든.

 

한스가 손을 털며 호들갑을 떨자, 지젤이 옆구리를 툭 하고 쳤다. 그러자 한스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오두방정을 떨었다고 생각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손 터는 것을 멈췄다.

 

사이가 좋은 남매군.

저희가 남매인 건 어떻게 아셨죠? 지젤의 말에 카인은 세이브, 라고 말했다. 지젤은 아, 이 여자 사기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담배?

아뇨, 건강 때문에.

오, 건강? 그거 아주 훌륭하군. 사실 최초의 담배는 매독과 치통, 편두통에 효과가 탁월해, 만병통치약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거 알아요? 거기다 긴장 효과에 두드러지게 효과가 있어, 옛날에는 인삼보다 귀했다고 하더라고. 이게.

 

담배를 깊이 한 모금 빤 카인은 계속 말했다.

 

타이레놀 국장이 아주 바쁜가 보네. 학생들인 당신들을 보낸 걸 보니. 아니면, 기자로서의 감이 떨어진 건가?

설마요, 그분은 아직도 현역으로 일할 정도로 열의가 넘치시는 분이신걸요?

 

지젤이 타이레놀 국장의 빽빽한 정수리를 떠올리며 말했다. 연기를 내뿜으며 카인은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하긴, 감이 떨어졌다면, 차라리 목을 매달고 죽어버린다고 어릴 적부터 말했으니. 잘 지내요. 언니는?

언니요? 한스가 말했다.

타이레놀 국장이 친언니예요?

그래. 한 살 위 언니지. 기자가 될 사람치고는 영 눈치들이 없네. 그건 됐고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죠. 당신들 지금 나비 스타킹 사건을 쫓고 있죠. 그리고 타이레놀 국장은 나에게 이 사건을 맡기고 싶어 하고? 응?

 

카인은 단번에 자신들이 왜 왔는지 알고 있었다.

 

여기 오기 전에 당신에 대해 읽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범죄자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거죠?

나에겐 비장의 무기인 세이브와 로드가 있죠. 당신들에게도 이미 사용했는걸?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당신들을 이 안으로 들였겠어?

 

지젤은 세이브와 로드에 관한 카인의 글을 읽었었다. 이 세계에는 초능력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지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 초능력이라는 걸 도저히 믿을 수도 믿기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 초능력이라는 것이 하나같이 뭐라고 해야 하나? 조잡하고, 엉망이었다. 

어린 시절 유리겔라가 숟가락이 휘게 하는 마술이 사실은 가짜라는 것을 안 뒤로 지젤은 초능력이나 마술 같은 것은 조금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신문기자를 꿈꾸게 되면서는 더더욱.

사실 카인의 능력은 다른 초능력자에 비해 엄청나게 뛰어나지는 않지만, 남들보다 좀 더 편리한 현실주의자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걸 믿는 건 아니지만 카인과 같은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있다면, 세상의 모든 범죄자를 잡는 데 이보다 획기적이고 편안한 건 없을 거다. 물론, 그랬다면 자신은 신문기자가 아니라 형사를 꿈꿨겠지만.

 

세이브와 로드요? 게임 할 때 쓰는 그 용어를 말씀하시는 거죠? 한스가 물었다.

맞아, 나에 대해 조사했다면, 세이브와 로드도 봤을 텐데? 그 기사는, 이미 90년대 초에 타임지에 소개된 적 있기는 하지만….

그러면, 그 능력….

지젤이 한스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네, 읽어봤죠. 하지만 그냥, 재밌는 인터뷰를 위해서 하신 거 아녔어요? 

한스가 이어 말했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당신은 이 범인을 이미 알고 있고 잡을 수 있겠네요.

이미 알 수는 없지, 내가 아무리 초능력자라고 한다지만. 그래도 범인이 눈앞에 있다면 어쩌면… 알겠지. 아마도? 

….

….

하지만 난 하지 않을 거야. 그 힘은, 세상은 날 여전히 엿 먹이려 하고 있으니까. 만일, 내가 초능력을 사용하게 된다면, 당신들도 최악을 경험하게 될 거야.

하지만, 좀 전에 사용했다면서요. 한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시시한 일에 힘을 조금 쓴다고 죽기야 하겠어?

그래도, 보고 싶네요, 당신의 능력이 진짜라는 것을…. 

내 말을 안 믿는군.

네. 진심으로!

….

….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믿든 안 믿든 상관없는데, 날 너무 미워는 하지 마.

그, 초능력이라는 거 한 번 보여 줄 수 있어요?

안 믿는다면서? 내가 증명할 필요가 있나?

상대가 안 믿어도 자기 능력을 뽐낼 수는 있죠?

재밌네. 좋아, 그 전에 한 가지 확실히 하자고. 이 건 당신이 먼저 시작한 거고, 나에겐 책임이 없어.

능력을 보여주는 건 당신인데 왜 나에게 문제가 생길 거라고 말하죠?

내 말 안 끝났어. 이거 하나 확실히 약속하라고 난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네 손에 피를 묻히는 건 내가 아니라 온전히 네 책임이란 거야.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힘을 쓰는데 왜 내 손에 피가 묻냐고요?

내가 초능력을 사용하면 알게 돼. 어쨌든 내 초능력은 범죄에 가까워,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고. 나조차도 감당 못 해 번번이 실패하고 말지. 어때, 이제 좀 겁이 나나?

아뇨, 겁나지 않아요. 어쨌든, 난 이 집 밖으로 당신을 끌어낼 겁니다.

언니가 좋아할 만하군.

칭찬 감사합니다. 대화를 나눌수록 국장이 왜 당신을 필요로 하는지 알 거 같아요.

그래? 어떤 면에서.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요. 여자의 직감?

헛똑똑이네. 잘 들어, 직감이라는 건 말이야, 애초에 글러 먹은 말이야. 그런 건 쓸데없는 요행에 불과하지. 네 말처럼 직감 따위가 세상에 딱딱 들어맞는다면 억울하게 감옥에 가는 사람이 없겠군, 안 그래? 설령 네 세상은 그 감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세상이나 다른 사람들의 세상도 꼭 그렇지 않다는 것만은 알아둬.

지금도 억울한 누명을 쓰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남의 죄도 대신 뒤집어쓰는 마당에, 도대체 감 따위가 뭐라고.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는 아니지만, 당신에게 확실히 이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뜬구름 없는 주제를 꺼내는걸.

그러니까… 나에게가, 아니라 그러니까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싶어서 이런 재수 없는 주제를 정했다. 하, 이거 참, 재밌는 친구군.

감 따위에 저도 의지하지 않아요. 당신 말처럼 현실에 감 따위가 들어올 틈은 없죠. 확실성과 정보와 증거만이 유일하게 우리가 믿는 것이죠.

세간에서는 지금 2주 동안 여성 4명이 살해당했고 다음번 범행 수법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오죽하면 타이레놀 국장이 저희 같은 아마추어에게 당신을 데려오라는 중대한 일을 맡겼을까요. 그만큼 연쇄살인마는 시간을 다투는 싸움이고, 다음번 범행의 수범이 진화하지 않게 하기 위해 촉박하다는 거죠.

….

여기 오면서, 당신에 대한 자료를 읽었어요. 나는 당신이 왜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지 알아요. 상처를 받은 것도 알고 사람도 믿지 못한다는 것도 알아요. 내가 당신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도 분명 똑같은 선택 했겠죠. 물론 제가 당신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배우지 않아도 알아요. 이번에도 세상에 손을 내밀면 당신은 또 상처받고, 날카로운 쇠붙이에 다치겠죠. 하지만, 당신이 나서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범죄의 희생양이 될 겁니다.

연쇄살인범을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최선인가요, 카인? 여전히 당신 생각은 그냥 내버려두겠다는 쪽인가요?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도?

날, 이해한다고? 그건 이해가, 아니라 오만한 거 아닌가? 그리고 초능력이 특별하다고? 내 초능력을 믿지 못하는 주제에? 그래, 네 말대로 내가 특별하다고 치자. 이 초능력이. 하지만 이건 정말이지 역겨워. 잠깐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삼일을 지독한 두통에 시달려야 하고 메스꺼움과 여태 착한 일을 하고도 지금 네 혀와 눈 같은 경멸을 받아야 하지. 부작용이 너무 심해. 내가 신이나 능력을 믿지 않는 게 왜 인 줄 알아? 그것들이 바로 진실/사실이라는 것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넌 위선자고. 이 더러운 정부의 개 같으니라고! 으악!

 

그때 지젤은 카인의 몸에 올라타 목을 졸랐다. 이, 빌어먹을 인간. 그런 좋은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 못 하는 이 똥 덩어리야말로 희생자들을 대신해 죽어 마땅했다. 

한스는 지젤을 말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지젤이 밀치는 바람에 볼품없이 한쪽으로 나뒹굴고 말았다.

이, 초능력은 이 바보 같고 한심한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와야 했어. 욕망으로 번뜩이는 지젤의 눈은 탐욕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곧이어, 카인의 부릅뜬 눈이 초점을 잃어간다. 동공은 크게 수축하고 몸은 차갑게 식어갔다. 카인은 숨은 지젤의 손에 의해 완전히 멈췄다.

 

 

 

 

세이브 2. 카인은 어느 날, 계란 노른자가 뒤집듯 세상이 자신을 가지고 농담 따먹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인은 프로파일러의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신발장 앞에서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지젤은 몇 번이나 카인을 설득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음번을 기약하며, 지젤과 한스는 물러나야 했다. 여기에 좀 더 머무른다면 좋겠지만, 희생자들의 주변 인물들도 조사해야 했기에 더 이상 미적거릴 시간이 없었다.

 

깜빡했는데, 지젤 네 말이 맞아. 엿 먹이는 세상과 싸우기엔 난 성격이 지랄 같거든. 

그건 정말 농담으로….

그러니, 알아둬. 넌 날 여기서 데리고 나갈 수는 없어. 지젤. 넌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 그만 나가줘.

…알겠어요, 가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묻죠. 왜 카인이에요?

간지나니까. 후후. 농담이야. 카인은 웃음을 멈추고 계속 말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고 적인 존재, 그게 바로 나야.

…. 

표정이 좋군. 신문기자라면 응당 그래야 하지. 지젤, 난,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파괴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이건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카인의 집을 나서며, 지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예리한 칼날처럼 스쳐 지나갔다. 

카인이 있다면 세상 어딘가에 선량한 아벨도 존재하지 않을까? 그리고 겁쟁이인 카인보다 아벨은 더 용감한 사람이기를 바라며 그들은 차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

 

 

초능력의 부작용은 상대가 갑자기 자신에게 말도 안 되는 분노와 살인 충동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카인이 사람들과 함께일 때는 긴장과 세이브, 두 개만 집중했다. 긴장을 놓치고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목숨을 잃는 건 순식간이었다. 세이브와 로드는 불편하지만, 자신을 살리는 것 또한 세이브와 로드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살인자를 앞에 두고 태평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을 누가 상상할 수 있으며 그 일을 매번 알고도 반복할 수 있겠는가. 카인 자신조차도 때로는 눈앞에서 몇 번이나 경험한 것들을 보고도 믿지 못할 때가 있는데.

똑같은 교육과 진실을 말해도 사람들은 제각각 받아들인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안다 하더라도 몇몇 인간들은 지구가 평면이라고 믿는 것처럼, 천국을 믿는 사람에게 당신의 천국이 업습니다, 말하는 바보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굳이 시비를 붙일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세이브와 로드를 한때는 증명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소용없는 것이 그때는 이미 로드로 불러온 세상이기에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거나 소실된 채였다. 그래서 카인은 선택해야 했다. 평생 거짓말쟁이로 살거나 초능력의 기능적인 문제 탓으로 돌려버리거나. 

그리고 카인의 선택은 후자였다. 어느 날 초능력이 사용할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국장에게 말했다. 국장은 심각한 얼굴로, 카인을 대신해 서서히 일을 줄여주었다. 그렇게 카인은 삶으로부터 자기 능력에 한계를 부여하고 도망치기에 성공했다.

 자신이 그랬듯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진심이 늘 통하기 마련이라면 거짓도 마찬가지니까.

 

그는 세상과 차라리 결별을 선택하는 게 양쪽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라 생각해, 모든 것들을 놓아버렸다. 그런데, 이제 와 모두 자기 잘못이라니. 겁쟁이라니. 지젤에게 말하고 싶다.

제아무리 뛰어난 능력이라도 혼자서는 불가능하며, 설령 실행이라는 이름으로 행진 하더라도 벽에 향해 돌진하는 이가 되고 싶지 않다고.

 

카인은 자기 삶에 구두점이나 쉼표 같은 건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고 넣어본 적이 없었다. 만일, 자신도 모르게 그런 게 있다면 그건 늘 그랬듯 얄궂은 운명이요 지독하게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신의 세 치 혀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유리알을 닦는 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었다. 카인은 어느새 저물고 있는 하늘을 보았다. 노랑과 주황빛이 어우러진 노을이 인간의 표피처럼 얇아지더니 점점 제 색을 감추고는 완전히 어두운 빛을 내뿜으며 비명을 지르고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