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작 소설] 어느 겨울, 고해하는 사람들

마을 경비의 고백

담요 사이에 시린 바람이 들어오자, 몸을 부르르 떤 수도승은 한 번 몸을 뒤척였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빛에 그는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몸을 안쪽으로 들이밀었지만, 불꽃과 그의 거리는 멀었다.

가물가물한 눈을 떠보니 불 앞에는 한쪽 팔에 붕대를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누구였더라? 생각할 무렵 남자의 얼굴 위로 죄책감과 어둠이 불꽃에 비쳤다.

 

막 잠에서 깬 머리로 그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찬바람이 수도승의 빈 머리카락을 건드리자 아, 이번에 갑작스럽게 오크 떼에게 습격받아 빈으로 향한다던 남자임을 떠올렸다. 기사와 마부뿐만 아니라 남자와는 오늘 처음 만난 사이였다. 아까 마차 안에서 경비라고 그는 자신을 소개했다.

 

마을 경비로 혼자 살아남은 남자는 마을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몹시도 괴로워했다. 아까 수도승은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 괴로움을 하루빨리 내려놓으라고, 신에게 고백하면 신은 용서하신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의 눈은 희열과 광기로 물들더니 “신에게 고해성사하면, 무조건 어떤 죄든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광견병처럼 침을 질질 흘리고 온몸을 떠는 남자를 겨우 떼어내며,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에 얼마나 죄책감이 들면 이러나 싶어 자애로운 미소를 띠며 수도승은 네라고 대답했다. 거기다 덧붙여 자기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없고 살아남는 것은 인간이 최우선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며 인간 세상에 지은 죄는 늘 신의 시련이며 그 죄 또한 인간이 아닌 신이 감당할 것이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남자는 창백한 푸른 불을 앞에 두고 두 발을 넓게 벌린 채 앉아 있었다. 아까 전 마부나 기사에게 잠깐 눈이나 붙여두라며 불과 보초는 자신이 서겠다고 먼저 제안했던 무뚝뚝하지만, 겸손한 성격의 남자였다. 미친 면도 있는 거 같지만.

 

그의 입에서“나의 죄를 고백합니다.”라는 말에 나는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남자와 그와의 사이는 생각해 보니 제법 떨어져 있어서 남자에게 들릴 리는 없다.

 

잠들기 전 수도승은 들었다. 자신이 아낌없이 조언 때문이라고. 그래서 신에게 죄를 고하고 싶다며 하루빨리 빈으로 가고 싶다는 남자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수도승만 들었다. 어느새 남자는 불 앞에서 쩍 벌렸던 두 다리를 가지런히 꿇으며 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 자리에 살아 숨 쉬고 있고 존재하지만,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었던 걸 고백하겠습니다. 신이시여, 지금부터 내가 저질렀던 죄악을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고백하겠습니다. 사람이 죄책감보다 늘 앞설 수 없기에, 이 모든 것이 나를 삼키기 전에 내 죄를 고백하려 합니다. 나는 아주 위험한 순간에 내가 지난 몇 년간 살면서 알고 지냈던 어린 소녀의 손을 놓쳤습니다. 그 아이가 부디 죽음이 자기 생각보다 앞섰을 때 그걸 오래 기억하지 않았으며 하며 오래 고통받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제가 놓친 소녀의 이름은 티아라. 보석처럼 영민하고 반짝이는 미소를 지닌 소녀입니다.”

 

남자의 입에서 나온 두 번째 구절은 앞선 음성보다 더 낮고 음울한 목소리였고 물기가 젖어있었다.

 

“티아라는 내 소꿉친구의 딸입니다. 내 소꿉친구는 마을에서 제일가는 미녀로, 나 같은 가난한 마을 경비에 시집오기에는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지만 나이가 많은 늙은 남자에게 팔려 가듯 시집을 갔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그 늙은 남자와 결혼하지 말아 달라고, 너를 좋아하고 있다고 고백했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며 그녀 역시 나를 사랑하지만 내 고백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신에게 맹세하던 거 이때의 고백은 그녀와 나 사이에 최초이며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으며 이 자리에서 최초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저도 그녀도 그때 이후로 서로의 마음을 그저 속으로만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늙은 남자는 그녀와 결혼하고 얼마 안 가 뒈져버렸지만, 그녀는 그 뒤로 저를 사랑하기에 재혼도 하지 않고 혼자서 딸을 잘 키우자는 심정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티아라는 그녀를 닮아 무척이나 아름답고 무럭무럭 잘 성장해 갔습니다.

이제 12살로 그 아이가 걷는 모든 길은 반짝임으로 순수함으로 어른이 되기 전에 그 티 없는 맑음으로 가득하리라 나도 내 그녀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신이 티아라의 미소와 해맑고 사랑스러움을 질투했는지 어느 날 마을에 오크 떼가 들이닥쳤습니다. 아비규환 속에서 나는 소녀와 그녀만은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리고 무너진 마을 성당 잔햇더미에서 그녀와 딸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잔해에 몸이 반이나 깔렸고 내가 돌을 들어 올렸을 때는 하체가 이미…….” 여기서 남자는 호흡이 심하게 흐트러졌고 젖은 소리는 더 컸다. 잠시 말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은 뒤 남자는 계속 말했다. “소녀는 무사했지만, 엄마를 애처롭게 부르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은 가망 없으니, 나에게 부탁했습니다. 딸만이라도 제발 딸만이라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도망쳐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내 목숨을 걸고 그녀에게 꼭 그렇겠노라며 약속하며 마지막 약속을 꼭 지키리라 다짐했습니다.”

 

여기까지 들은 수도승은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과 이별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토록 깨끗하고 맑은 영혼들은 어찌하려 빨리 신들의 품으로 돌아가는지. 어째서 저런 고통 속에 들이미는지 수도승은 처음으로 신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신이 행하신 것을 묻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기에 수도승은 두 손을 하얗게 질릴 때까지 꽉 부여잡았다. 그리고 남자의 마을 주민들이(남자를 포함해서) 부디 안식과 평온을 얻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렸다.

 

“나는 우리의 꿈을 무너뜨렸습니다.”

 

오크 떼 사이에서 남자 혼자만 살아남은 것만 봐도 소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뻔했다. 아마 무참히 살해됐을 것이다. 세 번째 구절이 시작되자 수도승은 흐- 하고 울음을 참는데 어느새 깼는지 탄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수도승은 그들과 함께 소리 없는 울음을 터트렸다. 어느새 그들 모두 남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오크와 맞서 싸우다 귀는 망가진 것인지 아니면 다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계속 고백을 이어갔다.

 

“오크들의 수는 너무나 많았고 나는 기사가 아니라 일개 마을 경비였기에 그들을 다 상대하기엔 혼자 힘으론 나아가기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마을은 불타고 살아남은 사람이라곤 이제 티아라와 나뿐이었습니다. 티아라의 떨리는 손을 잡으며 나는 너만큼은 어떻게든 이 마을에서 데리고 도망쳐 주겠다고 그녀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대장 오크로 보이는 자가 우리 앞에 등장했습니다. 키가 2메다에 달하는 그 괴물의 목엔 목걸이처럼 인간의 머리가 전리품처럼 대롱대롱 달려 있었습니다. 나는 티아라의 눈을 감겨주며 애써 소녀가 이 끔찍한 광경을 오래도록 남아 있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 괴물은 자신을 오크들의 족장이라고 소개했고, 티아라를 신부로 데려가기 위해 왔으니 순순히 소녀만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헛소리하지 말라며 객기를 부르듯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습니다. 콧방귀를 끼며 멍청한 선택을 한 걸 곧 후회하게 해주겠다며 족장은 손가락 하나를 까닥하자, 족장보다는 작지만 덩치가 큰 오크 한 명이 나왔습니다. 그리곤 순식간에 나를 붙잡고 손가락 하나를 뚝 하고 부러뜨렸습니다. 세상, 그렇게 아픈 충격과 고통은 처음이었습니다. 이래도 포기하지 않을래 하는 오크의 저열한 말에 나는 이를 드러내며, 꺼지라고 소리쳤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톡톡 오크가 내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건 어린아이에게 장난감을 뺐는 것만큼 아주 손쉬운 일이었습니다.

사실 나는 첫 번째 손가락이 부러졌을 때 소녀를 넘기려고 갈등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크는 내 속마음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내 눈짓도 모르는지 계속해서 내 손가락을 부러뜨렸고 네 번째 손가락이 부러졌을 때 나는 바지에 오줌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줘. 나는 참으로 한심하고, 비굴하게 말했습니다. 오크 대장이 참을성이 없다며, 실실실 웃으며 나오더니, 티아라를 붙잡았습니다. 티아라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내 옷을 붙잡으며 살려주세요, 아저씨 제 발 살려주세요! 라고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티아라가 붙잡은 팔이 하필이면, 좀 전에 오크가 부러뜨린 곳이라 뿌리쳤습니다. 그때 머릿속으로 힐난하는 소꿉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를 믿었었는데, 왜라는 말이 들려왔지만 나는 내가 살았다는 것에, 소녀를 팔아넘기고 살아났다는 것에, 나는 그 목소리를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그 늙은 남편이 뒈졌는데, 한 번 지저분해진 몸으로는 어차피 두 번 다시 깨끗해질 수 없으면서 성녀처럼 구는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었으니까요.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한 번도 나에게 그 몸을 내어준 적이 없었습니다.”

 

남자는 욕심과 욕망에 수도승은 아까 전까지만 해도 느꼈던 구원과 그들의 아픔이 어느새 구토감과 역겨움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거기다 좀 전에 분명 남자는 그 손을 놓치고 싶어서 놓친 것은 아니라고 첫 번째에 발언에서 했었다. 하지만 세 번째 발언에서 남자는 자신이 살기 위해 소녀를 오크에게 넘긴 것이었다.

 

“나는 이제 인정합니다.”

 

남자의 마지막 구절에 안심과 평온을 얻은 것처럼 차분하고 침착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선택을 했다는 것을. 오크들이 나를 무시하고 소녀를 데리고 떠났을 한 없이 안도했습니다. 비록 나만 살아남았지만 내가 한 선택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수도승님 깨어계시죠. 아까부터 제 얘기 다 듣고 있었다는 걸 압니다. 이제 제 마지막 고백의 종장입니다.”

 

수도승은 남자의 미친 고백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가 자신을 부르는 걸 모른 척할 수 없어 몸을 일으키고 앉았다. 남자는 수도승 앞까지 비틀거리며 다가오더니 무릎을 꿇고 말했다.

 

“나의 자유를 위해, 내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당신의 말처럼 나는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소녀를 오크들에게 바친 것이 필수적이었음을, 이제 내 죄는 내 것이 아닌 신의 손에 맡겨졌음을 믿습니다. 이제 나는 고백을 마치려고 합니다. 고백했으니 나는 속죄되겠지요. 한 번도 가지 않은 길(고백)을 걷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 같습니다.”

 

남자의 마지막 구절은 내 신앙을 부정하고 심장을 찔렀으며 내 신을 모욕하고 조롱까지 했다. 남자의 모든 고백과 인정 앞에 신이 과연 용서할까. 제발 신이 이 모든 것을 듣고 외면하지도 잊지 않았으면 했다. 인간인 자신조차도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남자를 목 졸라 죽여버리고 싶은데 관망하는 신이 어쩌면 존재하지도 못할 신이 이걸 판단하는 건 괴기스러웠다. 그런데 그때 커다란 그림자가 남자와 수도승 앞에 드리워졌다.

 

날카로운 금붙이가 남자의 몸을 꿰뚫었다. 컥. 소리를 내며 남자는 천국에 가겠지요, 라고 끝까지 제 안위만을 생각하는 모습에서 수도승의 얼굴은 한없이 일그러졌다. 기사가 도저히 못 참고 칼로 남자를 찌른 것이다. 기사의 눈은 경멸과 역겨움을 참으려고 이를 악다물었다.

 

남자를 두세 번 더 찌르고 이제는 죽었겠다고 생각한 기사는 자신의 귀한 검에 더러운 피가 묻었다는 듯 휙 하고 허공에 털고서 검집에 검을 넣고는 모닥불 앞에 가 앉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수도승은 눈을 질끈 감는다.

 

“고해성사하고 싶습니다.”

 

기사의 말에 수도승은 신이시여, 어디 계시나이까. 하고 비통한 소리를 내뱉었다. 오늘 밤처럼 지독한 어둠과 비밀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고백으로 이어지는 어느 겨울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사실은 기사도 마부도 수도승도 하나둘, 고해성사로 이야기를 풀고 싶었는데, 제 역량이 부족해서 더는 쓰기가 쉽지 않네요. 거기다 다 쓰면 어마어마한 분량이 나올 거 같아 서둘러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하하. 가상의 세계로 쓰는 건 늘 힘든 거 같아요. 제대로 된 준비도 조사도 없으면 늘 이야기는 제 맘대로 뻗쳐 나가니까요. 언젠가 뒤에 저 들의 이야기를 또 들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급하게 쓴 거라 맞춤법이 제 멋대로겠지만, 나중에 고치기로 하고 일단 올리도록 하겠습니다.